[기자의 눈] 아직도 일본에 배울 것이 많다

“한국의 정보기술(IT)산업이 일본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얘기가 많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일본 엡손의 니와 노리오 부사장은 최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우리의 IT산업 경쟁력에 대해 일침(一針)을 놓았다. 그는 “한국의 IT산업이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뤘지만 장기전을 치르기에는 총알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총알’은 바로 ‘핵심 부품’을 의미한다. 엡손은 자사의 프린터제품이 가격경쟁력을 잃고 있지만 그리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다. 이유가 있다. 핵심 부품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프린터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엡손은 매년 1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이 15조원에 달했다. 프린터 완제품 매출은 감소했을지 몰라도 잉크 카트리지 등 핵심 부품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업체들은 휴대폰, 디지털TV 등 디지털기기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일본에서 보다 많은 핵심 부품을 수입해야 한다. 핵심 부품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니와 부사장은 “한국 기업은 일본에서 기술ㆍ기계ㆍ부품을 들여와 일본보다 더 값싸고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 미국 등지에 내다파는 경우가 많다”면서 “잉크젯프린터의 경우 기술을 사온 후 주문자생산(OEM) 방식을 통해 생산하는데 이런 방법을 고수하는 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엡손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첨단기술로 평가되는 3중LCD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은 앞으로 휴대폰, 디지털TV, 프린터 등 디지털기기에 널리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엡손은 미래의 확실한 먹을거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흔히 ‘한국은 IT 강국’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일본 IT 업계의 기술경쟁력을 고려하면 이 말은 그저 ‘국내용’ 자화자찬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으로부터 배울 게 많다. 자화자찬은 발전을 막는 독배(毒杯)가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