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홍콩서 지재권 허브의 길을 묻다


[기고] 홍콩에서 지재권 허브의 길을 묻다

김영민 특허청장

1839년 1월 중국 광동성 호문강가, 변발을 늘어뜨린 청나라 군인들이 사방에 운집한 구경꾼 사이로 셀 수 없이 많은 나무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강제로 열어젖힌 상자 안에서 흰 가루가 쏟아졌다. 중국을 동아병부(東亞病夫)로 전락시킨 아편이었다. 강가에 새로 판 구덩이에 부어진 가루들은 석회로 화학처리 된 후 바다로 흘려보내 졌다. 이런 작업을 20일 넘게 하고 나서야 영국 상인들로부터 압수한 2만 상자의 아편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편전쟁’ 발발의 원인이 된 임칙서의 ‘호문소연’(虎門銷煙: 호문에서 아편을 소각하다)을 묘사한 장면이다. 그의 결단은 호기로웠으나 대가는 굴욕적이었다. 세계 최강 영국해군에 대항한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는 대패했고 1842년 체결된 ‘난징(南京)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홍콩이 영국에 할양됐다. 홍콩이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천혜의 항구라는 지리적 이점을 가졌던 홍콩은 해양제국 영국의 지배하에서 세계적인 해양무역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독보적인 무역항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렸던 20세기 중반에는 재빠르게 금융에 눈을 돌려 금융 허브로서의 입지도 탄탄히 굳혔다.

최근 필자는 홍콩 정부의 초청으로 홍콩을 방문했다. 홍콩의 현재를 살펴볼 좋은 기회였다. 놀랍게도 홍콩은 무역과 금융에 이어 새로운 ‘허브’ 전략을 그려가고 있었다. 바로 ‘지재권 허브’였다. 홍콩은 ‘지재권 교역의 중심’과 ‘지재권 분쟁조정의 중심’이라는 두 개의 방향으로 허브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우선 홍콩정부는 지난 2013년 3월에 상무경제발전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지재권 교역 활성화 추진단을 구성하고 최근에는 홍콩을 아시아 지재권 교역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실제로 홍콩 무역발전국은 지난 2010년부터 매년 세계 각국에서 수천 명이 참석하는 지재권 사업화 아시아 지역 포럼을 개최하여 국제적인 지재권 교역 장터를 만들고 있으며 지난 2013년 12월에는 Asia IP Exchange라는 온라인 지재권 교역 플랫폼도 출범시켰다.

아울러 중재조정 활성화를 위한 환경조성에도 홍콩 정부는 적극 나섰다. 대부분의 지재권 소송은 중재조정에 비해 그 비용이 훨씬 더 소요된다. 애플과 삼성의 지재권 소송에서 애플이 지출한 법률 비용만 6,000만달러가 넘었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소송에 따른 시간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소송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동떨어진 감정적인 소모로 번지는 부가적인 위험도 안고 있다. 지재권 분야의 중재조정이 ‘화해’를 통한 분쟁해결로 새로운 ‘가치창출’이 가능한 이유이다. 필자가 만난 홍콩 주요 정부인사들이 지재권 분쟁의 중재조정 활용 필요성을 역설하고 홍콩을 국제 중재허브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소개한 것도 이러한 가치창출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홍콩은 지재권 허브라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홍콩하면 떠올려지는 것이 ‘무역’, ‘금융’, 또는 ‘쇼핑’이 아닌 ‘지재권’이 될 날이 머지않은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를 초청한 이면에는 어쩌면 우리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지식재산 시스템의 미래와 홍콩의 계획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역시 지재권의 새로운 가치창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정부는 IP 금융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설정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재권이 부동산과 같이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될 수 있도록 IP 거래 시스템을 혁신하고 있다. 지재권 분쟁의 새로운 해결을 모색하는 중재조정센터 몇 곳도 이미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의 무역규모,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특허출원 세계 4강의 지위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이 국제적인 중재조정센터로서 발전할 잠재력을 갖췄다고 보여진다.

이번 방문으로 한국과 홍콩의 지재권 정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많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여정에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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