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칼럼] ‘세계 평화의 섬’ 제주와 남북화해의 감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4일 제주한라대 강당에서 열린 ‘민족화해 제주포럼’에서 대북 감귤지원 등 남북 화해협력정책의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

내년(2015년)은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남북간에는 체제 차이에서 비롯된 적대와 갈등 속에서도 긴장완화를 위한 탐색과 대화국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동포애를 나누는 인도적 교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역대 우리 정부의 노력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의 10.4정상선언 등을 통해 대결적 남북관계의 근본 틀을 바꾸는데 일정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마주한 과제들이 적지 않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입장차와 군사적 충돌이 끊이지 않는 등 신뢰를 통한 관계발전을 지속적으로 이어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다.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해 진퇴를 반복해 온 남북관계의 악순환을 끊고 새롭고 지속가능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께서 천명하신 ‘드레스덴 구상’은 결국 신뢰에 기반한 교류 협력이. 그동안 교류를 통해 남북관계의 냉기가 어느 정도 녹아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채 진행되어 온 남북 대화는 조그만 바람에도 단절되기 일쑤였다.

국민적 합의가 담보되지 않은 대북 정책은 우리 내부의 동력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또 다른 갈등과 불신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신뢰회복을 위한 전향적 자세’

신뢰회복이 급선무이다. 그리고 서로의 신뢰를 증진할 수 있는 조치들을 꾸준하게 진행시켜 나가되 원칙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인도적인 지원과 교류가 끊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당국의 대결에 아이들의 먹거리가 꼭 필요한 응급 의료품이 연동된다는 것은 비인간적으로 보여진다. 인간적인 부분은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것에 대해 남북당국자는 물론 국민들도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우선 우리 내부에서부터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미 체제 대결은 끝이 났다. 세계 어느 누가 북이 한국보다 더 잘산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더 너그러워져야 하고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우리나라가 남북관계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동생을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역할이 쉬울까? 그 일을 다른 나라가 주도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물론 비판할 것은 냉정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래도 같은 민족이라는 따뜻함은 유지해야 한다. 이런 자세로 남과 북이 지속적인 교류사업, 협력사업을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 같은 사업은 아주 중요하다. 개성공단같이 흔들리지 않는 남북교류사업의 모델을 만들고 확산시켜나가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신뢰가 쌓일 것이다. 남북 간에 신뢰가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교류협력이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과 신뢰의 기반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지자체이다. 12년을 중단 없이 교류했고, 지자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북한의 초청으로 도민들이 단체로 4차례나 방북을 하기도 했다. 신뢰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의 대북교류협력 사업은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계기로 탄력을 받아 추진될 수 있었다. 오늘 ‘민족화해 제주포럼’의 대주제도 ‘제주, 평화와 협력의 날개로 날자’이다. 제주에게 평화와 협력은 별개가 아니다. 세계평화의 섬 지정 후속 17대 사업 중에는 감귤보내기 등 3개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2005년 우리 정부는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중앙정부가 지정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제주’평화나‘한반도’평화를 넘어‘세계’평화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중앙정부가 제주 내부에 국한된, 도민들만의 자족적 평화의 섬이 아니라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제주도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평화 실현의 과제를 국가나 국제관계 차원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제주의 세계평화의 섬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새롭고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계기는 정상회담과 외국정상들의 제주 방문에서 찾을 수 있다.

1991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1996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수상 등 세계의 지도자들이 제주를 방문,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논의했다. 동서냉전이 해체되는 화해무드를 조성한 곳이 이곳 제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 계기를 기념하고자 2001년‘제주평화포럼’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세계평화의 섬 지정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계기가 1998년부터 시작한‘북한 감귤보내기 운동’이다.

‘제주 대북교류 협력사업의 역사’

‘북한 감귤 보내기 운동’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대북지원 사업이다. 1998년 12월부터 시작되어 2010년 2월까지 총 12회에 걸쳐 감귤 4만 8,000여 톤과 당근 1만 8,000여 톤 등 총 6만 6,000여톤을 지원했다. ‘북한 감귤 보내기 운동’은 지방자치 단체와 민간단체인 남북협력 제주도민운동본부가 일체가 되어 추진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민관협력 대북지원 사례이다. 외신들은 이 사업에 “비타민 C 외교”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제주의 남북교류협력에 감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근 보내기, 북한 어린이에게 겨울옷 보내기, 목초종자 지원, 수해피해 복구지원, 의약품 지원, 제주흑돼지 평양농장지원 등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했다. 북한 정부도 풍부한 비타민C가 담긴 감귤을 대량으로 지원받으면서, 감사의 표시로 제주도민 대표단의 방북을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2002년 4월 제1차 방북은 분단 사상 최초의 대규모 인적교류였다. 이후 200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제주도민 835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주로부터’

제주특별자치도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의 역사와 경험 속에서 이미 후속 사업의 실마리를 만들어 놓았다. 하나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한 교차관광 사업’이다. 제주는 명실상부한 세계적 관광지이다. 제주도의 우수한 관광자원과 축적된 관광개발 노하우를 북한지역의 관광개발에 접목시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북한도 최근 마식령 스키장 건설 등 관광개발과 외국인 관광개방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남북한 교차관광 사업’은 200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된 ‘한라산-백두산 관광단 교환’에 기초하고 있다.

이 합의 이후 한국 대표단의 백두산 관광은 실현했으나, 북한 대표단의 한라산 관광은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향후 북한 대표단의 한라산 답방을 추진한다면 ‘남북한 교차관광’을 위한 협력의 계기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라산-백두산 생태·환경보존 공동협력 사업’이다. 한라산은 유네스코로부터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잇달아 지정되어 국제적 수준의 보전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백두산은 최근 들어 화산 폭발설 등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북한으로서도 백두산의 온전한 보전은 당면과제이다.

‘한라산-백두산 생태·환경보존 공동협력 사업’은 지난 2003년 7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제3차 제주도민 대표단 북한 방문을 위한 실무협의와 2003년 8월 제3차 제주도민 방북단이 백두산 관광 시 한라산 연구소와 백두산 연구소 간에 ‘상호 교차탐사’로 잠정 합의된 사항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라산-백두산 생태·환경 보존 공동 사업은 제주도의 입장에서는 세계환경수도 유치에 북한에게는 백두산 환경보호를 위한 학술탐사에 이바지하는 상호 윈·윈 사업이 될 것이다

‘대북감귤지원, 제주~북한 크루즈, 북한대표단 한라산답방과 한라산-백두산 학술탐사 등 이뤄져야’

미사일 발사, 핵실험, 도발위협은 북한이 우리를 압박할 때 사용하는 단골메뉴이다. 이럴 때마다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은 가중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북한의 속내는 이러한 표면적 남북관계와 다를 수 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대외개방 및 대외관계 개선이라는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동안에는 주로 중국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다 안 되니까 미국에 압박을 가했다. 최근에는 그 조차도 안 되니까 러시아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어느 곳 하나도 쉽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은 6개의 국가 경제특구와 19개의 지방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여기에는 수도인 평양까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최근 러시아와 북한을 연결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는 우리 기업이 시범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절박함이 엿보인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이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우리도 그에 걸맞게 준비해야 한다. 제주가 먼저 북한에 개방해야 한다. 교류협력이 단절된 지 5년 가까이 지나고 있다. 어떻게 다시 빗장을 풀고 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다가 오기를 기다리는 소극적 개방이 되어서는 안된다. 제주가 먼저 다가가는 적극적 개방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감귤보내기’와 ‘제주도민 방북’은 우리 제주만이 갖고 있는 대북 교류협력의 노하우이다. 제주만이 북한과 쌓아온 신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은 남북한만의, 즉 한반도만의 미래에 그치지 않는다. 남북 교류협력은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그리고 세계 평화를 이루는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추진을 검토할 것이다. 제주는 ‘북한 감귤 보내기 운동’의 재개를 위한 타당성을 면밀하게 검토 중이다.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감귤 보내기 운동’의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발표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정부 차원의 배려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주에서는 남북한 간의 공식회담 이외에도 각종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제주포럼이 해마다 열린다. 어떤 주제든 좋다. 내년 5월에 개최될 예정인 제주포럼에 북한 측을 정중히 초대한다.

제주도에서 최근 논의가 시작된 제주-북한 크루즈 라인은 성사될 경우 동북아 평화 증진,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서 출발하여 북한 및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역내 국가의 도시들을 순회하는 ‘동북아 평화 크루즈 관광’이 머지않아 성사되기를 기대한다.

남북한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생태·환경 유산인 한라산과 백두산에 대한 상호 교차탐사를 위해 제주와 북한 간 상호 방문을 제안한다. 제주도민을 대표하여 언제든 가슴을 열고 대화하고 협의할 계획이다.

‘상호 준중없이는 미래도 없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냈던 로타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ere) 전 총리는 “상호 존중 없이는 동·서독의 미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북한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통해 상생의 미래를 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화해 제주포럼’은 전향적인 남북 교류협력과 발전을 향한 공론의 장이다. ‘평화의 섬’ 제주의 노력이 밀알이 되어 박근혜정부의 ‘통일 대박’이 정말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이 칼럼은 원 지사가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와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가 공동 주최하고 통일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한 ‘민족화해 제주포럼’에서 발표한 기조연설을 칼럼 형식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이날 제주포럼에는 홍사덕 민화협 대표상임의장과 김덕룡 상임고문, 이성헌 상임집행위원장, 강영석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 이사장 등이 참석했고, 김영수 서강대 교수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남북교류협력 추진방향’, 고성준 제주대 교수가 ‘제주특별자치도의 남북교류협력 평가와 발전방향’을 주제발표했고,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과 고경민 제주대 교수, 고관용 제주한라대 교수, 이신선 서귀포YMCA 사무총장, 진행남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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