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으로 얼룩진 유년, 예술의 깊이를 더하다

4살때 미국 입양…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재혼…
■ 진 마이어슨 '끝없는 경계'전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동양인… 그림에 빠져 세계적 화가로
■ 한영욱 '삶'전
형편 어려워 대학졸업에 11년… 인물묘사 탁월한 작가로 성공

진 마이어슨의 '죽음의 발명 앞에(Before the Invention of Death)'

한영욱의 '어머니(Mother)'

세계적 반열에 오른 화가 중에는 타고난 재능과 끈질긴 집념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적지 않다. 반면 범상치 않은 가정 환경이 빚어낸 철학적 사고와 남다른 감수성이 시대의 공감을 얻으며 작품 세계를 인정 받는 작가들도 종종 눈에 띤다. 이번에 비슷한 시기에 전시를 갖는 진 마이어스(42)와 한영욱(51) 작가도 그렇게 범상치 않은 유년 시절을 자양분 삼아 예술적인 깊이를 더하고 있다.

◇진 마이어슨의 '끝없는 경계', 뜨거운 에너지를 뿜다=한국계 미국 작가인 진 마이어슨은 1972년 인천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입양 당시 심경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집안에 온통 여자아이뿐이어서 무척이나 낯설었다"고 회고한다. 자신의 한국 이름 박진호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마이어슨은 말도 통하지 않고, 동양인이라고는 동네를 통틀어 자신뿐이었던 어린 시절 주로 혼자 놀았다. 그나마 소년이 마음 둘 곳은 그림이었다. 아웃사이더로서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그 모습을 캔버스에 옮기면서 소년은 조금씩 살아갈 목적을 찾아간다.

미니애폴리스 칼리지 오브 아트 앤드 디자인과 펜실베이니아 순수미술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런던 사치갤러리, 뉴욕 첼시미술관,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의 주요 전시에 초대받는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 잡았다.

10월 6일까지 종로구 사간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총 10여점. 2년간의 긴 작업 끝에 완성한 가로 6m짜리 '죽음의 발명 앞에(Before the Invention of Death)'를 비롯해 최근 홍콩에서 완성한 '평원(Broadacre)'과 '아르코산티(Arcosanti)' 등에선 뜨거운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특히 '죽음의 발명 앞에'는 빽빽한 도시의 수많은 단편이 압착기로 찌그러뜨린 것처럼 뭉개진 가운데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

◇한영욱의 '삶', 인간을 만나 인생을 성찰하다=4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른 여인과 결혼했다. 새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다른 여인은 어린 소년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자 경계해야 할 타인이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현실의 삶보다는 인간 실존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소년은 그림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강원대 사범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졸업하기까지 무려 11년이 걸린다. 드디어 39살이 되던 해, 홍익대 회화과에 입학하면서 소위 정통 엘리트 코스에 진입한다. 늦깎이 작가로 성공한 주인공은 바로 한영욱(51)이다. 오는 14일까지 강남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삶'에는 죽음을 앞둔 어르신의 노구를 그린 '노인(Old Man)'부터 나이든 한 여인이 나체로 죽은 듯이 누워있는 '꿈(Dream)', 그리고 자신의 사춘기시절 가장 힘든 대상이자 화해해야 할 대상이었던 새 어머니의 얼굴을 그린 '어머니(Mother)'까지 1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살아 숨쉬는 듯한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화법은 캔버스와 붓 대신 알루미늄 판과 드릴 등의 재질을 이용한 스트래치 기법이다. 인물의 정확한 묘사를 넘어서 강렬한 존재감과 내면의 울림을 가장 잘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그의 인물화 중 하나인 '얼굴(Face)'이 추정가의 5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면서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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