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18대 대통령선거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를 거치며 입장이 돌변했다. 지금은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는 새누리당 일부 국회의원과 민주통합당보다 기업규제 강화에 더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는 모습이다.
◇정권마다 '존재가치'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공정위=14년 전인 1999년, 당시 김대중 정부는 대기업 총수들과 이른바 '재벌개혁 5+3' 원칙에 합의한다. 재벌개혁 5+3은 기업구조 개혁 5대 원칙과 3대 보완대책을 가리킨다. 전자는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보증채무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자 책임 강화 등 대기업의 건전경영에 초점이 맞춰졌고 후자는 ▲순환출자 및 부당내부거래 억제 ▲변칙상속 차단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등 경제력 집중 억제와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근절이 핵심이었다. 이 8개 항의 합의 도출에는 공정위의 역할이 가장 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까지 이어진 이런 공정위의 재벌개혁 기조는 이명박 정권 들어 180도 바뀌었다.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재벌개혁에는 뒷짐을 진 채 물가당국으로 변신했다. 총대는 김동수 전 공정위원장이 멨다. 물가안정이 최대 현안으로 부각된 2011년 공정위는 각종 식품업체와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조사를 벌이며 가격인상을 억눌렀다.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물가통제'라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랬던 공정위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또다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재벌개혁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며 의지를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법안과 관련한 논란도 경제민주화 시류에 편승한 공정위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이다. 현재 정치권과 공정위가 함께 만든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계열사 간 거래가 총수 일가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인지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경우 총수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를 지시한 것으로 추정한 뒤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당장 법조계에서는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거래를 규제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입증책임까지 전환한 것은 명백한 과잉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불거지자 공정위는 뒤늦게 "추정조항을 삭제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조사국'까지…전형적인 밥그릇 만들기=공정위 안팎에서는 이런 과잉입법이 경제민주화라는 시류에 편승해 몸집을 부풀리려는 권력기관의 속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정위가 법체계ㆍ경제현실을 내세워 경제민주화 법안에 부정적이었는데 갑자기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며 "공정위가 시류에 따라 변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재벌전담 조사국 부활을 추진하는 것도 몸집 부풀리기 시도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노대래 공정위원장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현행 공정위 조직과 인력으로는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관련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재벌조사국 부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2005년 폐지된 조사국을 8년 만에 부활시키는 것은 검찰의 '중수부 폐지' 등 사정기관 권한축소 움직임과 역행하는 것이다. 한 공정거래 전문변호사는 "사정기관들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해나가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며 "최근 일감 몰아주기 과잉입법 논란이나 조사국 부활 추진 등도 이런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