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 삶의 방식이다. 오늘날 세계가 대립하고 있는 문화 전쟁의 양상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완벽한 창구다. 프랭클린 포어는 축구의 세계화가 오히려 민족주의를 부활시켰다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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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으로 조명한 세계화의 허상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민족주의 부활·자본강화 역할" '세계화 덫' 걸린 아이러니 지적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 삶의 방식이다. 오늘날 세계가 대립하고 있는 문화 전쟁의 양상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완벽한 창구다. 프랭클린 포어는 축구의 세계화가 오히려 민족주의를 부활시켰다고 주장한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경기에 쏠리는 세계의 관심은 결코 올림픽에 뒤지지 않는다. 뿐 아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나 라틴아메리카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같은 다국적 토너먼트에는 수천명의 떼거리 응원단이 국경을 넘어 몰려 다닐 정도로 놀라운 결속력과 흡입력을 자랑한다. 국가간 장벽을 허물며 세계인을 하나로 만든다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미국 잡지사 '뉴 리퍼블릭'의 기자 프랭클린 포어는 8개월간 세계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뽑아냈다.
인종 청소의 비극적 역사를 안고 있는 세르비아에서 출발한 그의 여정은 스코틀랜드, 브라질,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이란을 거쳐 그의 고향인 미국에서 끝 맺는다. 언뜻 보면 열광적인 축구 팬의 세계 기행 같지만, 사실 이 책은 90년대 말 이후 쏟아진 세계화 비판서의 맥락을 잇고 있다.
원 제목인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설명하는가(How Soccer Explains The World)'는 이 책의 의도를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 뒤 그는 세계화에 성공한 듯 보이는 축구가 결국 '세계화의 덫'에 걸렸다는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 세계화 바람이 국가의 벽을 허물고 세계인을 한데 결속시켜 줄 것이라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민족주의를 부활시키고 이에 기생하는 자본의 힘만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포어는 세르비아에서 가장 사랑 받는 구단인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에 열광하는 갱스터 서포터들이 밀로셰비치의 돌격부대로 전락하는 과정을 통해 축구가 민족주의 부활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에서 벌어지는 '셀틱'과 '레인저스'의 경기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대리전이나 다름없다. 스코틀랜드의 카톨릭과 개신교간의 감정의 골이 축구를 통해 어떻게 분출되는지 훌리건의 생생한 목소리가 증언한다.
브라질 편에서는 '카르톨라스'라고 하는 클럽 운영주들의 부패한 축구 문화가 역량 있는 브라질 축구 선수를 몰아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고발한다. "머나먼 타국에서 싸우고, 브라질 국내에 남아있는 선수들은 극소수며 주로 특파원을 통해서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브라질 축구 영웅들은 체첸의 군인과 같다"는 그의 말은 멋진 비유지만 비극적인 브라질 축구 현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포어는 축구에서 사회 혁명이라는 놀라운 가능성도 찾아냈다. 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축구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란 여성들은 이에 대한 저항을 통해 이슬람 여성 운동의 발판을 만들어 냈다.
부동산 사업에서 출발해 언론 재벌을 거쳐 AC밀란 구단주가 된 뒤 결국 이탈리아 총리에 오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눈길에는 예리한 칼날이 서려있다. 베를루스코니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그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한 한 편의 드라마라는 데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탈리아만이 아닌 전 세계 정치 무대의 공통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홍병문 기자 hbm@sed.co.kr
입력시간 : 2005-03-20 1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