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최종 타결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는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을 놓고 우리 측과 북한 측 대표단 간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우리 측은 북한의 책임을 입증할 증거자료들을 제시하고 군인들의 부상 사실을 설명하면서 "우리 국민이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이런 피해를 당한 사실을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수 없고 이 사건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돼야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북한 측 대표단은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는 식의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부정적인 사례들을 다 들춰내서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남북관계를 개선할 것인지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이를 다시 반박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 대표단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는 게 한 정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결국 북측은 우리 측의 강한 압박 끝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책임을 사실상 인정해 처음으로 남북 합의문서에 사건의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고 '유감'이라는 표현을 담게 됐다.
이 당국자는 "회담 전반부에서는 지뢰 도발 사건에 대한 북한의 시인 및 사과에 대한 논의가, 후반부에서는 도발의 실효적인 재발 방지 방안이 각각 논의됐다"고 설명하면서 재발 방지 방안 합의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고 회상했다. 양측의 의견이 본격적인 합의점을 찾은 시점은 지난 24일 오후11시를 넘겨서다. 그다음 공동합의문의 문안을 작성하는 과정이 이뤄졌다.
회담은 전체적으로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대표단은 최근의 남북관계와 관련해 "이 상태로 가면 안 된다"면서 "고위급이 만나서 못 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강한 타결 의지를 나타냈다. 우리 측 역시 타개 의지가 강했다. 이러한 양측의 의지 덕분에 입장 대립 속에서 장시간 진행된 회담이 합의점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측은 천안함 폭침, 북핵 등 개별 사례를 언급하는 대신 이번 지뢰 도발 사건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러 차례 북한의 도발이 일어난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지적했다. 이에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언급하면서 "남측도 우리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5·24 조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양측 모두 최근의 군사적 대치 국면을 전환하는 데 집중한 셈이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남북 간 현안 중 유일하게 이번 공동합의문에 구체적인 추진 일정과 함께 포함됐다. 남북 모두 이산가족 상봉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이룬 결과다.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으나 우리 측은 "그 둘은 별개의 문제"라며 "이 자리에서는 군사적 대치 국면의 정리가 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금강산 관광 문제가 이산가족 상봉 추진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합의가 이뤄진 만큼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측 모두 22일부터 이날 새벽까지 무박 4일 회담의 강행군을 하면서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회담이 진행된 평화의집에는 휴식을 취할 만한 별도의 공간이 없다. 우리 측 대표단과 동행한 정부 당국자는 "첫날 회담이 정회된 후 사무실에서 1시간 잔 게 전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