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고… 붙이고… 재계 M&A 가속화 속내는] 경영 군살빼기·후계구도 정리·재무구조 개선 '다목적 카드'

비주력사업 발빠르게 팔아 기업 미래경쟁력 확보 노려
복잡한 지분관계 단순화… 승계 부담 줄이기도 한 몫
실적 악화 한계사업 매각… 신용등급 회복효과 기대도

삼성과 한화의 빅딜을 계기로 기업들의 인수합병(M&A) 및 사업 재편 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그룹이 4개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직원들이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이 발표된 지난 26일 10대 그룹 소속 기업들 상당수는 내부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표면적으로는 삼성·한화 계열사 매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자리였지만 실제로는 이번 빅딜이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지시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사업부 재편 수준의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일이지만 계열사 자체를 통째로 매각하는 정도의 '새 판 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재계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은 매우 드문 편이다. 외국과 달리 대규모 M&A를 직접 주도해본 경험이 거의 없고 기업문화도 보수적인 탓이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 교수는 "한국 기업에는 M&A를 통한 사업 확장이나 구조조정을 꺼리는 문화가 뿌리박혀 있고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의 조직원끼리 겉도는 문제도 있다"며 "삼성·한화의 선제적 빅딜은 오히려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군살 빼기 및 사업 재편 요구하는 경영환경=최근 분위기 변화의 배경에는 우선 '바꾸지 않으면 죽는다'는 기업인들의 절박한 위기의식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원·달러, 원·엔 환율이 급변동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유가까지 폭락하면서 내년 사업계획을 짜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기업정책실장은 "경영환경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선제적으로 사업을 정리해 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면서 "시기를 놓쳐 이미 부실해진 사업은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KT가 추진하고 있는 비주력사업 정리는 이 같은 움직임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KT는 통신업 본연에 집중하겠다는 취지 아래 업계 1위 렌터카 운영업체인 KT렌탈과 KT캐피탈을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알짜 계열사로 분류되지만 위기에 빠르고 강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게 황창규 KT 회장의 복안이다.

두산그룹의 경우 최근 학습지 출판업체인 두산동아를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매각해 소비재사업 정리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선단식 경영으로는 계열사 간 시너지를 만들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중공업·건설장비 전문업체로 발돋움하기 위한 조치다.

이 밖에 효성그룹 역시 최근 페트병 음료용기를 만드는 패키징사업부문을 매각 완료했다. 효성은 여기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탄소섬유 등 첨단소재사업에 대한 투자에 나서 미래 먹거리를 새롭게 발굴할 계획이다.

◇기업 승계구도 정리도 한몫=여기에 한국 기업이 가지고 있는 후계 문제도 M&A를 촉진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삼성이 한화에 매각한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건희 회장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거의 없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삼성종합화학 지분 4.95%를 보유하고 있으나 비중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삼성이 이번 매각으로 비주력사업을 정리하면서 승계구도도 명확히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순환출자구조 해소 등에 상당한 자금이 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 내에서 추가 M&A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로서는 수면 밑에 머물고 있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 등도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국내외 특정 기업을 매입해 특정 계열사를 집중 육성하는 방식으로 승계구도 재편에 대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적부진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 시급=국제경쟁력이 약화돼 한계상황을 맞고 있는 업종에서 M&A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실적부진으로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기업 신용등급이 낮아져 자금조달비용이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용등급이 Baa2(무디스 기준)로 하향된 포스코가 대표적인 사례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취임 이후 "신용등급을 A등급으로 회복시키겠다"며 강력한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올해 3·4분기 누적 기준 3조원이 넘는 막대한 영업손실을 낸 현대중공업은 권오갑 사장이 직접 나서 해외법인의 통폐합을 지시했으며 풍력발전 등을 맡고 있는 '그린에너지사업부'가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 회사는 또한 포스코와의 '백기사' 협약을 깨면서까지 보유하고 있던 포스코 지분을 매각하기도 했다.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을 통해 자연스러운 사업 재편을 노렸던 삼성중공업 역시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 당초 중복되는 사업을 정리해 재무구조 개선을 노렸으나 국민연금의 반대로 합병 자체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이 보유한 해외사업권 일부를 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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