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같은 비극이 일어날 줄은…
그야말로 재해였다. 지하철의 안전관리를 미리 철저히 했다면 그 같은 끔찍한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구지하철 참사만이 문제가 아니다. 산업현장에서는 매년 대구지하철 같은 참사는 아니지만 소리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605명. 부상과 질병으로 인해 요양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은 7만9,306명으로 8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산업재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10조원(2002년)을 훌쩍 넘는다는 점이다. 인천국제공항 하나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약 7조9,000억원이라고 하니 산재로 인한 피해가 사고 당사자 뿐 아니라 해당 기업, 나아가서는 우리 경제를 좀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 참사, 천안초등학생 참사 등 기억하기 싫은 사고가 줄을 잇고 있지만 많은 기업들은 아직도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다. 특히 전체 산재의 70%를 일으키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안전에 눈과 귀를 닫고 있다. 무재해 운동과 S마크 인증 등 각종 산재 예방프로그램과 기업들의 자발적인 교육 등을 통해 산재에 더욱 신경써야 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것이 바로 기업의 체력을 강화시키고 결국 국가경제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의 현황= 산업재해란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업무와 연관이 있는 건설물이나 설비,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해서나 작업 등 기타 업무 때문에 사망하거나 부상 또는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산업재해에 있어서는 후진국이고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 한해동안 산업현장에서는 하루에 7명 꼴인 2,650명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재해도 하루에 250명인 8만1,911명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있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우발적인 사고보다 열악한 근로조건에 근로자가 노출되어 있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지난 해에 1,378명으로 지난 2001년보다 173명이 줄었지만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 해에 총 1,227명으로 전년보다 30명이 늘어났다. 노동부 관계자는 “업무상 질병 사망은 주로 뇌심혈관질환자로 지난 해에 57명이 증가했다”며 “발생 형태별 사망자수는 뇌심혈관질환 760명, 추락 464명, 진폐 386명, 사업장 교통사고 149명의 순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667명(25.6%)으로 가장 많았고 제조업 641명(24.6%), 광업 396명(15.2%)순으로 발생했다. 특히 건설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49.2%가 추락, 광업 사망자의 90%가 진폐증으로 인해 사망했다.
또 우리나라 근로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수는 1.49명으로 산업안전 선진국인 영국(0.09)의 16.6배, 독일(0.30)의 5배, 일본(0.35)과 미국(0.36)의 4배가 넘고 있다.
◇심각한 경제적 손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산재로 인한 손실은 연간 10조1,000억원으로 추정, 1년 국가예산 118조원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손실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 지난 2000년에 7조원였던 손실액수가 지난 2001년에는 8조원으로 늘어나더니 지난 해에는 급기야 1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10조원을 넘는 산재 손실액은 노사간의 파업 등으로 인한 피해 손실규모 7,000억원보다도 무려 6배나 많은 것”이라며 “이 정도의 경제적 손실 규모는 7조9,000억원인 인천국제공항의 건설비보다도 더 비싸다”고 말했다.
산업재해는 또 교통사고보다 발생빈도나 손실이 훨씬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공단의 다른 관계자는 “교통사고보다도 산업재해가 인명피해나 경제적 손실규모에 있어서 훨씬 심각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 필수= 재해는 사전에 예고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한다는 점에서 예방이 최고의 대책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할 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은 열악한 회사 사정 등을 핑계(?)로 산업안전을 뒤로 미루기가 일쑤다. 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산재자의 70% 이상이 근로자 50명 미만의 영세한 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산재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산재로 인한 피해가 기업의 커다란 짐이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스스로 안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실시하는
▲무재해 운동
▲안전 캠페인
▲S마크 안전인증 제도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서 위험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정부는 산재 안전을 위한 예산을 늘려서 기업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재의 한 전문가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에 기업들이 `이익 극대화`라는 경제논리만을 앞세우면서 산업안전망 설치와 직원들에 대한 교육 등 투자를 등한시하고 있다”며 “경영자들이 안전에 대한 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산재의 감소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정부도 산재 관련 예산을 더욱 늘려서 영세한 중소기업들의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안전 교육도 더욱 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용호기자 chamgi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