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자금 옛말… 은행.기업 모두 외면

■ 정책자금 '애물단지'기업, 자격 까다롭고 일반대출과 차이없어 한때 '특혜 자금'이라는 비판이 일 정도로 기업들이 줄을 서서 배정을 기다렸던 정책자금 대출이 최근 위탁운용자(은행)와 수혜자(기업) 양측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하기에 이른 것은 기본적으로 이 제도가 시장의 변화를 탄력적으로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세금리는 크게 떨어졌는데 정책자금 대출금리는 제자리에 머물렀고 위탁운용에 드는 최소한의 비용만이라도 보장해달라는 은행들의 수수료 인상 요구도 '묵살' 또는 '추후 논의'식으로 퇴짜맞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과정에서 각종 기금이나 정부 부처에 대해 예산배정의 칼자루를 쥔 기획예산처와 기금을 직접 운용하는 당사자들, 그리고 자금을 위탁받아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 등 3자가 서로 겉돌며 정책자금 대출의 효율적 운용을 터놓고 협의한 적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에 맞게 정책자금대출제도 자체를 대폭 뜯어 고치고 수십종에 달하는 대출종류도 간소화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책자금 금리 일반대출과 차이 없어=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의 기업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6.75%를 기록, 지난해 1월의 7.76%에 비해 지속적으로 인하되고 있다. 반면 정책자금 대출금리는 이러한 시중금리 인하폭을 반영하지 못한 채 수혜 업체에 까다로운 자격요건과 복잡한 절차만 요구하고 있다. 현재 정책자금 대출은 상당수가 일반 기업대출 금리와 비슷한 6%대를 기록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기금 중 구조개선자금이 현재 6.25%, 농공단지입주자금이 6.41%, 산업기술자금(기술담보)이 6.4%의 금리. 환경개선지원기금과 재활용산업육성기금 역시 5.91%로 거의 6% 수준의 금리가 적용되고 있다. 우량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최저 5%대 후반. 따라서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라면 정책자금보다 일반대출을 쓰는 게 비용이 싸고 절차도 간편하다는 결론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책자금 대출금리를 인하하려면 기금이나 재정에 미리 예산을 반영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항상 '사후약방문'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취급은행 손떼기 일보 직전=은행들은 재정자금이나 공공기금을 차입해 대출하면서 수수료로 얻는 마진율은 0.5∼1.5%에 머물고 있으나 취급비용은 2.0% 이상 소요돼 역마진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책ㆍ시중은행 할 것 없이 '은행의 공공성' 이전에 '생존'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더이상의 위탁운용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금이나 재정자금을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는 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9,000억원 규모의 대출잔액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구조개선자금의 경우 차입금리와 대출금리가 각각 5.75%와 6.25%로 마진이 0.5%인 데 비해 자금운용에 따른 취급비용은 2.01%에 이른다"고 말했다. 구조개선자금 외에 ▦중소기업창업기금 ▦산업재해예방시설자금 ▦산업기반기금 ▦가스안전관리기금 등의 주요 기금과 ▦산업기술개발자금 ▦서울시지방재정자금 등 재정자금 역시 비슷한 실정이라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지난해부터 계속 관계부처나 기관에 건의서를 보낸 데 이어 최근에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수수료 인상요청 건의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당 부처나 관계 기관들은 별도의 수수료를 신설해 은행들에 지급하기 위해서는 따로 예산배정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다 은행들의 취급비용이 계산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당장 현실화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인 대안 마련 시급=기업들 입장에서 금리혜택이 분명하지 않고 은행들도 정책자금을 취급할 만한 특별한 유인(誘因)이 없을 경우 올해 6조원의 공급계획을 갖고 있는 기업대상 정책자금 대출은 사실상 계획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별도의 예산배정을 이유로 내년 이후에나 이들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입장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정책자금 대출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이 이들 대출의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