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업소 '불황의 역설'
문 닫는 곳 속출하지만 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거래 급감 등 환경 악화에도일거리 없는 은퇴자 몰려와개업 몇달 만에 폐업 악순환
진영태기자 nothingman@sed.co.kr
“슈퍼마켓처럼 문 연다고 손님이 오는게 아닌데 옆에 또 중개업소가 들어왔네요. 6개월 지나면 또 문 닫을 거에요.”(마포 A공인 관계자)
서울 마포구에서는 지난 4월 10곳의 공인중개업소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전체 중개업소 수는 오히려 늘었다. 16곳이 새로 개업했기 때문이다. 휴업했다 다시 문을 연 5곳을 포함하면 총 1,057개로 전월대비 11곳이 늘어난 셈이다. 같은달 마포구 일대 주택 거래량은 559건. 한달간 중개업소 두곳 당 한건 수준의 거래량이다. 지난해 4월 820건에 비하면 거래량은 3분의2토막이 났다.
극심한 부동산 거래 침체 속에서도 올들어 전국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좀처럼 줄지 않고 소폭이나마 증가세다.
20일 한국부동산중개사협회에 따르면 4월말 현재 전국의 중개업소는 총 8만4,412개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4월의 8만3,974개보다 618개 많은 수치다. 같은 기간 전국의 주택거래량은 19만2,633건에서 14만6,798건으로 줄었다. 거래량은 1년전보다 24%나 줄었는데 미미한 폭이긴 하지만 중개업소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협회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부동산 거래 침체로 중개사들의 영업 환경은 크게 악화됐지만 사무실은 전체적으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악의 거래 침체에도 중개업소 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경기 침체 탓이라는 분석이다.
거래는 바닥 수준으로 떨어져 문을 닫는 중개업소들이 속출하지만 이 자리를 마땅한 새 일거리를 찾지 못한 은퇴자들이 대체하고 있기 대문에 정작 중개업소는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규모 사무실만 구하면 개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자영업에 비해 리스크가 적다는 것도 중개업소가 줄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워낙 거래가 없다 보니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서는 중개업소를 연 지 불과 몇 개월만에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마포 B공인 관계자는 “최근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소형 주택 거래를 기대하며 들어오는 중개업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몇 달째 일손을 놓고 있다가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고 전했다.
실제로 본지가 국토해양부 온나라부동산포털의 주택 거래량과 개업 중개업소 현황을 분석한 결과 서울시내 중개업소 한곳당 평균 주택 매매 거래량은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11건에서 2010년에는 7.54건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9.5건으로 다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올해의 경우 4월말 현재 서울시내 2만3,000여개 중개업소의 총 주택매매 거래량은 5만1,813건으로 4개월간 한곳당 평균 거래량이 2.2건에 그쳤다. 이 같은 추세라면 중개업소당 연간 거래량이 6.6건으로 지난해의 3분의2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북권등 거래가 급감한 외곽지역 중개업소는 올들어 한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한 곳이 부지기수”라며 “중개업소는 줄지 않는데 거래가 줄면 더욱더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