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사람에 의해 운전된다. 그러므로 볼보에서 수행하는 모든 활동은 안전이라는 지상과제를 기초로 하며 이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명차 「볼보」.
그 볼보의 창업주인 아서 가브리엘슨은 자동차에 대한 기본 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것은 그의 신념이었고 오늘날 볼보를 안전의 대명사로 만든 정신적 기반이 됐다.
스웨덴에서는 멋진 요트와 개, 그리고 볼보를 가장 갖고 싶어하는 세가지로 꼽는다. 그만큼 볼보는 국민차로서, 국민기업으로서 사랑받고 있다.
이같은 국민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볼보는 전세계로 뻣어나가 20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100여개 국가에서 마케팅 및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볼보의 사업부문은 크게 7가지다. 승용차·트럭·버스·건설장비·펜타(선박용 엔진)·항공이 주요 사업이고 나머지는 자금·보험 등 지원부문이다. 이중 승용차 사업을 맡은 볼보카는 볼보 전체 매출액의 50%이상을 차지할만큼 가장 비중이 크다.
트럭제조업체 가운데 규모와 매출면에서 세계 빅 3에 드는 볼보트럭은 유지비가 저렴하고 환경친화적인 제품으로 잘 알려져있다. 볼보버스는 12톤 이상의 대형버스를 생산하며 천연가스로 운행하는 버스를 처음 만들었다.
삼성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을 인수해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사업부가 볼보건설장비며, 볼보펜타는 선박용 및 산업용 대형엔진을 만든다. 볼보에어로는 항공엔진 전문제작업체다.
지난해 볼보그룹의 총 매출액은 얼추 226억달러.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승용차 4만대를 비롯해 트럭·건설장비 등 매출액의 10%를 벌어들였다.
볼보그룹이 거느리고 있는 6개 주요 사업부를 보면 볼보가 「수송그룹」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말해 탈 것을 만들거나 탈 것을 움직이는 심장(엔진)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전문화는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특히 볼보의 지난 역사는 더욱 그렇다. 6년전 스웨덴은 지금의 한국경제와 비슷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등 거품경제가 본격화하면서 스웨덴 국립은행까지 위기에 몰렸다. 당시 스웨덴 크로네는 42%나 절하되기도 했다.
볼보 또한 그 시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급기야 프랑스 「르노」와 합병을 추진했다. 65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합병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주주들은 국민기업인 볼보를 외국에 팔 수 없다며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법을 찾겠다고 나섰고 합병은 무산됐다.
이 때부터 볼보의 가혹한 자기살 도려내기가 시작됐다.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기 바로 전인 94년까지만 해도 볼보는 『여러가지 사업을 갖고 있어야만 한 부분의 경기가 어려워져도 다른 곳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백화점기업이었다.
식품·음료·생활용품·제약 등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스웨덴을 꽉 움켜쥐고 있었던 거대한 문어였던 셈이다.
볼보는 적자사업과 비주력사업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르노를 비롯해 다른 기업과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소유구조도 말끔히 바로잡았다. 모두 460억 크로네(58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사업체를 매각했고, 130억크로네(16억5,000만달러)를 들여 핵심사업(수송기계분야)에 맞는 사업체를 인수했다. 남은 돈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이 작업은 8가지 경영원칙 아래서 진행됐다. 핵심사업에의 집중, 전략적인 경영, 튼튼한 재무구조, 소비자지향, 적극적인 신제품 개발, 소비자만족, 비용절감, 리더쉽과 경쟁력강화가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볼보는 오늘날과 같은 단단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볼보는 최근 다시 한번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볼보카의 「껍질깨기」는 돋보인다. 전통적인 안전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소유하고 싶은 성공적인 전문 자동차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운전하는 즐거움과 가정의 소중함을 차를 통해 느낄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 볼보의 목표다. 볼보는 차를 팔기 보다는 가정과 환경, 삶을 중시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뛰고 있다.【박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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