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년 메시지를 통해 '다시 한번 바꿔야 한다'며 강도 높은 변화를 주문한 것도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성장성 둔화 우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이 회장은 지난 2일 신년 하례식에서 "신경영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다"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삼성전자를 놓고 보면 스마트폰과 TV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성장 정체국면에 접어들며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고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반도체는 선전하고 있으나 시스템반도체 부문은 상대적으로 부진에 빠져 있다. 삼성전자의 신수종 사업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 회장은 올해 3대 혁신과제로 △산업의 흐름을 선도하는 사업구조의 혁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기술 혁신 △글로벌 경영체제를 완성하는 시스템 혁신을 제시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우선 사업구조의 혁신을 강조함에 따라 올해에도 계열사 간 사업재편과 구조조정 작업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 계열사의 사업재편 여부가 주목된다. 앞서 삼성그룹은 지난해 제일모직의 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기고 제일모직을 소재 전문회사로 육성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TV·스마트폰 등 완제품과 반도체 같은 부품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아직 소재 분야의 경쟁력은 크게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미국 코닝에 매각하고 코닝 지분을 인수하기로 한 것도 소재 분야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카메라를 담당하는 디지털이미징사업부를 무선사업부 산하로 통합해 카메라와 스마트폰 간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기로 한 바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올해에도 각 계열사별로 이질적인 사업은 정리하고 비슷한 사업들은 한데 묶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사업개편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 회장이 강조한 기술 혁신의 키워드는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기술의 한계를 돌파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3D V낸드 메모리반도체가 꼽힌다. 삼성전자는 당시 반도체 미세화 경쟁이 기술적 문제로 한계에 부딪히자 셀을 3차원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선점했다. 삼성 관계자는 "기술 혁신은 기존 기술을 단순히 업그레이드하는 차원이 아니라 3D V낸드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이 강조한 시스템 혁신은 공급망관리(SCM)를 중심으로 추진될 것으로 관측된다.
SCM은 미리 예측한 수요를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공급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삼성전자는 세계적 수준의 SCM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의 강력한 SCM을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그 노하우를 다른 계열사로 확산시키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