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뿌리, 회계 투명성을 높이자] <중> 회계 정보는 투자자 위한 것

유명무실 감사위, 전문·독립성 높여야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 감사인 선정마저 제대로 못해
경영진은 감사비용 낮추기 급급… 감리 質 저하 초래
미국처럼 회계부정 조사권 등 막대한 권한 부여 필요

제임스 리디 미국KPMG 뉴욕사무소 감사 부문 부대표


"(미국에서는) 어떤 기업의 감사위원회도 회계 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감사 비용을 깎지 않습니다."

제임스 리디(사진) 미국KPMG 뉴욕사무소 감사 부문 부대표는 미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것은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사위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투자자에게 제대로 된 회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좋은 감사인을 선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사위원회는 회계 전문성을 갖추는 동시에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성도 유지해야 한다. 특히 감사위원회가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회계 부정을 감시할 수 있도록 막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져야 한다.

미국에서 감사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관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마련한 것은 지난 2002년 '사베이옥슬리법'이 만들어졌을 때다. 당시 미국 금융당국은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 설립으로 회계법인의 품질 감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피감법인도 스스로 회계 정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감사위원회의 구성과 정의를 명확하게 했다.

미 금융당국은 감사위원회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회 내에 '금융 전문가'를 반드시 한 명 이상 포함하도록 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사실과 이유를 공시하도록 했다. 또 금융 전문가의 이름을 밝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인사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독립성 강화를 위해서는 감사위원회에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감사위원회는 회계 부정을 인지했을 경우 직접 로펌과 회계법인을 고용해 조사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의 감사위원회가 회계 부정을 꼼꼼히 살피는 것은 이를 간과하거나 놓칠 경우 질 책임 또한 크기 때문이다.

리디 부대표는 회계 감사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사인과 감사위원회 간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대로 된 감사 보수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사위원회에 우리(회계사)가 무엇을 하고 왜 그것을 하는지, 그리고 왜 중요한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상법 제542조의11제2항에 '감사위원회 위원 중 1명 이상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일 것'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기업들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특별히 제재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상법상의 제제 규정은 물론 자본시장법, 한국거래소의 상장 규정에도 이와 관련해 문제 삼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기업의 감사위원회는 책임과 권한이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감사위원회의 가장 기본적 업무 중 하나인 감사인 선정마저 제대로 못할 정도다. 송문섭 삼일PwC회계법인 상무는 "현행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은 경영진이 감사인을 선임하면 감사위원회가 이를 승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대부분 기업의 감사위원회는 사실상 감사인 선정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감사위원회가 아닌 경영진이 감사인 선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대다수 기업은 회계 감사를 꼼꼼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감사인을 선정하기보다는 감사 보수를 낮추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올해 초 감사인을 변경하면서 감사 보수를 지난해에 비해 40% 이상 줄인 현대미포조선(010620)과 현대삼호중공업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업계에 미담으로 전해진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감사 보수 3배 인상도 한편으로 보면 회계 감사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카드의 경우 정 사장이 해외 사례와 비교하며 직접 감사 보수 인상을 지시했다"며 "현대카드가 자발적으로 감사 보수를 올려준 것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의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를 위한 제대로 된 회계 정보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나라도 조금씩 감사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7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기존에 회사 경영진이 가지고 있던 외부감사인 선임 권한을 감사위원회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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