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화폐

작년 폐기처분 은행권 2조2,000억… 쌓으면 에베레스트산 6배
올들어 손상 화폐 더 많아져 상반기 15% 늘어 1조3,600억
2007년 도입 새 1만원권 수명 끝나가는 것도 원인으로


제주도에 사는 이모씨는 축축하게 젖은 지폐 다발 2,200만원을 말리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시켰다가 돈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꺼냈다. 한국은행으로 그을린 지폐 뭉치를 가져간 그는 남은 면적에 따라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폐의 남은 면적이 75% 이상이면 전액, 40% 이상 75% 미만이면 반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불에 타거나 부패해서 폐기 처분된 은행권은 2조2,000억원(4억6,000만장). 5톤트럭 85대 분량이다. 줄로 세우면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416㎞)을 79회 왕복할 수 있는 거리(6만5,429㎞)고 쌓으면 백두산의 18배이자 에베레스트산의 6배 높이(4만9,224m)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을 험하게 쓰다 보니 매년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화폐 규모가 이처럼 많다.

폐기되는 손상 화폐 규모는 올 들어 더욱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한은이 폐기한 화폐는 1조3,620억원(주화 포함)으로 전기 대비 15.5%나 급증했다. 한은은 이를 새 화폐로 대체하는 데 264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손상 화폐가 이처럼 급증하는 것은 이용자들이 돈을 훼손한 탓도 있지만 지난 2007년 1월 도입된 새 1만원권 수명이 끝나가는 영향도 크다. 1만원권 평균 수명은 100개월. 올 상반기는 1만원권이 도입된 지 90개월 정도 된다. 실제 상반기 폐기 은행권 중 1만원권은 1조540억원으로 77.4%를 차지했다.

은행권 폐기 규모가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던 것은 2007~2008년이다. 새 1만원권이 나오고 옛 1만원권은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화폐 폐기액이 급증했다. 한은 관계자는 "당시 연간 5톤트럭 300대 분량이 폐기됐다"며 "앞으로 2~3년간 수명을 다한 1만원권 폐기물량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전 역시 찌그러지거나 부식되면 폐기된다. 지난해 폐기된 동전액은 15억원이다. 올 상반기의 경우 10억원이 폐기됐는데 100원짜리가 55.6%로 전체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손상된 주화는 건축폐기물이나 폐차 과정에서 나오기도 하고 사찰 등에서 관광객이 연못이나 돌탑에 던져놓은 동전이 수거되기도 한다.

이처럼 험하게 다뤄지는 화폐와 동전 때문에 새로 돈을 만드는 데 적잖은 비용이 다시 투입돼야 한다. 2009~2013년 은행권 제조에는 연평균 900억원, 동전 제조에는 600억원이 들어갔다. 한은 관계자는 "결국 새로 돈을 만드는 비용은 국민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돈을 깨끗이 다루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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