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궁'은 허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대비(왕의 어머니)가 왕의 뺨을 후려치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가 정사나 야사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차용을 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런 만큼 영화는 자유롭다. 아니 어쩌면 감독과 각본을 쓴 작가들이 자유로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영화는 자유로운 나머지 자극의 과잉으로 치닫는다.
스토리야 왕권을 둘러싼 치정과 암투라는 전형적인 구도지만 이 구도를 장식하는 정사신, 활극신 등눈요기 거리들은 풍부하다 못해, 넘쳐 흐른다.
영화의 줄거리는 신참판(안석환)의 딸 화연(조여정분)이 노비인 권유(김민준)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가 왕의 이복동생인 성원대군(김동욱분)의 눈에 들면서 파란은 시작된다. 성원대군이 화연을 사랑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비(박지영분)는 성원대군과 화연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화연을 왕의 후궁으로 들이면서 갈등의 무대는 궁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랑하던 여인이 이복 형인 왕의 비가 되고, 스스로도 후궁 출신인 대비는 왕을 독살하고 자신의 자식인 성원대군을 왕으로 올린다.
권력에는 부자지간도 없다더니 왕이 된 성원대군과 대비간의 암투가 시작되고, 왕은 동시에 화연을 탐한다는 전형적인 사극 에로물이다.
도드라지지 않는 각본임에도 영화를 살려내는 것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주연인 조여정과 김동욱의 연기가 무난하고, 내시감역의 이경영, 대비역을 맡은 박지영, 신참판으로 분한 안석환의 연기는 눈부시다.
그 동안 맡아 온 배역마다 조금씩 오버했던 박철민도 차분한 연기로 진가를 발휘한다.
배우들의 호연과, 모두에 언급했던 자극의 과잉에도 영화의 호흡은 늘어지는 편이다. 노출과 활극, 잔혹한 장면들이 비슷한 강도로 쉴새 없이 스크린을 넘나들다 보니 관객들의 감수성은 무뎌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와중에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영화를 매조지하는 것은 미술과 의상, 소품이다.
허구를 바탕으로 한 까닭에 허공으로 떠 오를 수도 있었던 영화를 리얼리티의 말뚝에 묶어 놓을 수 있었던 공로는 전적으로 이들의 몫이다. 6월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