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역사 속 시대정신·지식인에 대한 성찰

■ 시대정신과 지식인 (김호기 지음, 돌베개 펴냄)


오는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장 많이 회자되는 우리 시대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산업화'가 있었고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정부 때의 '민주화'에 이어 요즘은 '복지국가'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각 시대는 그 나름의 절박한 '시대적 요청'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한 시대를 가늠하는 긴급한 시대적 요청을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시대적 요청을 누구보다 앞서 인식하고 몸소 실천해 온 이들은 지식인, 혹은 지성인이나 사상가로 불렸다. 누구도 자기가 살아갈 시대를 선택할 수는 없으며 시대적 구속과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도 없기에 지식인과 시대정신의 관계는 밀접하다.

국내 대표 사회학자인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이 같은 주제로 신라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 지식인의 계보를 분석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불교사상의 태두인 원효의 통불교와 화쟁사상이 있었다. 한국 유학사상의 개척자인 최치원의 불교와 유학을 통합하려는 의지나 정몽주의 신념윤리와 정도전의 책임윤리도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사회에 빛이 됐다. 주자 성리학을 이해하고 심층적으로 해석한 이황의 '이기호발설'과 조선 성리학을 주체적으로 확립한 이이의 '이기일원론' 등 조선 중기까지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이 "한국적 지식인의 기원"이 됐다고 저자는 진단했다.

이어 실학적 실용주의를 정책적으로 구체화하고자 한 박지원의 '이용후생론'과 일련의 문제의식,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책으로 남긴 정약전과 실학파의 시대정신을 집대성한 정약용 형제의 혹독했던 삶 등은 '모더니티'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한 사례다. 적극적으로 서양을 수용해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했던 서재필의 열망,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의 민중지향적 평등사상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민족주의 역사의식을 체계화하고 독립을 강조한 신채호의 민족주의론과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황순원의 인간주의와 자유주의 등으로 퍼져나가 식민지 시대 이후의 시대정신을 이끌었다.

책은 특히 박정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정신을 대표"해 지식사회에 다각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지식인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새로운 시대정신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될 수도 있다"면서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우리 과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위한 가치를 주조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역사와 시대정신에 대한 고찰과 함께 신선한 시각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책이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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