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또 금감원인가

현대캐피탈은 지난 14일 고객 132만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회사 측은 오는 19일부터 고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방침이다. 의문이 생겼다. 즉시 조치해도 늦은 마당에 왜 5일이나 지난 후에 고객안내를 시작하는 것일까. 사건 초기부터 신속하게 대응해 온 현대캐피탈의 자세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정태영 핸대캐피탈 사장은 지난달 10일 43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을 직접 발표하면서 "죄송하고 수치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회사 측은 이후 고객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사실을 알리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진 금융감독원과 경찰 조사에는 적극 협조했고 언론의 취재요청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피해 및 복구상황을 알려왔다. 그랬던 현대캐피탈이 왜. 기자는 금융감독원이 17일 이례적으로 밤늦게 발표한 '현대캐피탈 해킹사고 검사결과 중간발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 눈길이 쏠렸다. 이번 해킹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은 총 175만명이라는 내용이 골자다. 취재 결과 금감원은 이 자료를 당초 18일에 배포할 예정이었지만 모 언론사가 관련 내용 보도를 강행하자 발표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의문은 의혹으로 바뀌었다. 금감원이 현대캐피탈에 공식발표(18일) 이후에 고객대응을 개시(19일)하라고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보인 것. 당초 금감원 계획대로 18일 중간발표를 했다면 현대캐피탈이 19일 고객안내를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대캐피탈은 이에 대해 "금감원의 압박은 없었다. 콜센터 인원을 보강하고 안내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며칠 걸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권 한 관계자는 "업계에는 금감원이 자신들의 검사 발표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현대캐피탈에 고객안내 시점을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는 현대캐피탈의 말이 맞길 바란다. 그렇다면 신속하게 고객정보 보호에 나서지 않은 민간 기업의 잘못으로만 치부될 뿐이다. 하지만 의혹이 사실이라면 가뜩이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금감원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금감원의 진심(眞心)이 100만명이 넘는 국민 안위보다 자신들의 실적을 포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라면 혈세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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