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출구전략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글로벌 머니무브(자금 대이동)는 앞으로 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대규모 양적완화 이후 4년 만에 글로벌 자금의 투자행태가 정반대로 바뀌면서 ▲신흥국에서 미국ㆍ유럽 등으로 ▲선진국의 경우 채권에서 주식으로 대이동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18일(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4일 현재 신흥국 주식투자 비중이 5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는 버냉키 연준 의장이 19일 출구전략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기 전에도 신흥국 엑소더스(대규모 탈출행렬)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는 뜻으로 버냉키 의장의 이번 발언을 기점으로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스코티아뱅크의 투자전략가 에두아르도 스아레즈는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처분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밝혔으며 윈틴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 신흥국 환율전략가는 "어떤 투자자도 떨어지는 칼날을 잡으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트 오클리 노무라 아시아 외환 트레이딩 담당자 역시 "신흥국 자산과 통화에는 여전히 막대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있다"며 "신흥국 매도세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에 신흥국들은 향후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윈틴 전략가는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에 돈줄이 마를 수 있고 이는 분명 신흥국 시장에 커다란 악재"라고 평가했다.
신흥국들은 가뜩이나 저성장에 시달리는 가운데 출구전략 공포까지 더해져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 인도는 지난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5%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음에도 출구전략 공포에 앞서 세 차례 진행했던 기준금리 인하 움직임을 중단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0.9%로 약 4년 만에 최악을 나타냈지만 화폐가치는 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선뜻 부양에 나서지 못하고 있으며 호주ㆍ태국 등도 진퇴양난에 빠졌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는 과감히 저성장을 용인하고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 잡기에 나섰으나 자국 화폐가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결국 신흥국의 경제기초가 얼마나 견고하느냐에 따라 향후 출구전략에 따른 희비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출구전략 공포로 일단 신흥국 전반에 걸쳐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다시 신흥국 시장에 투자할 때는 그 나라의 경제기초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결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 경제기초가 약한 남아공과 브라질의 달러 대비 자국 화폐가치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18일 각각 3.1%, 1.3%(14일 대비)나 하락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펀더멘털이 강한 필리핀은 같은 기간 화폐가치가 0.7% 하락하는 등 비교적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