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샤론없는 중동

‘이스라엘의 전쟁영웅’이자 ‘중동 평화의 전도사’인 아리엘 샤론 총리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3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회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또 한명의 영웅이 인류의 품에서 떠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생물학적 수명이야 연장될 수 있어도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내외 언론들은 이미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영웅이 걸어온 길을 조심스럽게 되짚어보고 있다. 이는 중동 평화를 유지하는 데 샤론이 갖는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샤론이 없는 중동 평화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편생 중동전쟁을 주도했던 군인 샤론은 총리직에 오르면서 중동 평화 로드맵 마련에 앞장서는 실리주의 정치인으로 거듭났으며 특유의 ‘뚝심’을 발휘해 평화정책을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우파세력의 견제를 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그래서 그가 중동 평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샤론에 대한 평가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뉴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샤론의 평화정책은 그 속셈이 의심스러우며 앞으로의 계획도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영웅의 죽음’을 반기는 세력도 있다. 이란의 ‘막말’ 대통령으로 유명한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는 “샤론이 빨리 죽기를 바란다”며 저주를 퍼부었고 이스라엘 내 보수파들도 “샤론의 뇌출혈은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는 “세계 최악의 지도자를 제거하게 됐다”는 논평을 냈다. 마치 죽어가는 먹잇감의 숨통이 빨리 끊기기를 기다리는 ‘까마귀떼’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후대 역사가에 의해 내려질 것이다. 하지만 중동의 평화는 샤론이라는 주인공이 퇴장한 정치무대를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물론 그의 퇴장으로 ‘평화’라는 제목의 극이 곧바로 중단될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주인공이 바뀌어도 연극은 계속 무대에 올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선거에서 새로운 주인공들이 전편보다 나은 속편을 만들어줄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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