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포트] 부패척결에 고급차 줄줄이 매물로… 중고차 때아닌 호황

고가 차량 선호 심해 핸드백 바꾸듯 매매 활발
당국 관리 미숙으로 유통 시스템 등 아직 부실

베이징 남서부에 위치한 베이징지우지동처교역시장에 미국 크라이슬러의 중고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김현수기자


지난 8일 베이징 남서쪽에 위치한 베이징지우지동처교역시장.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 탓인지 바깥의 중고차 전시장은 한가했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말은 달라진다. 유럽산 고가 승용차들이 전시된 전시장에는 중고차를 팔고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경력 5년의 중고차 딜러 왕즈런씨는 "급매나 문제가 있는 차량은 터무니 없는 가격에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왕씨를 만나고 있는 동안에도 한 딜러는 신차 가격이 127만위안에 달하는 2012년식 포르쉐를 95만위안에 판매했다. 고가의 중고차들이 시장에 급증한 이유는 시진핑 체제 이후 부패척결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공식적으로 당간부나 정부관료들이 고급차를 관용차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데다 고급차를 타고 다니다가는 부패관료로 찍힐 수 있는 만큼 소유하고 있던 고급 차들을 시장에 중고로 내놓고 있다.

이처럼 고급 중고차 거래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전체 중고차 거래량도 480만대로 전년대비 10.9% 상승했고 거래금액은 2,689억위안으로 25%나 늘어났다. 반면 지난해 신차 판매량은 1,931만대로 전년대비 4.3%늘어나는데 그쳤다.

◇핸드백 바꾸듯 차 바꾸는 중국소비자= 부패척결이라는 이벤트에 매물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중국 중고차 업계는 고급차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갑작스럽게 부가 늘어난 중국 소비자들이 고급차로 눈길을 돌리며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명품매장에서 줄을 서듯 고급차에 대한 대기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페라리, 메르세데스, 아우디, BMW, 람보르기니 등 10만 달러가 넘는 고가 차량들을 보유했던 중국인들은 사업이 잘되면 더 좋은 사양의 차량을 원하고 사업이 신통치 않으면 팔아버리는 경향이 있다"며 "이것이 중고차 시장 경기가 활황을 띠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시장예측기관들은 올해 중국 중고차 시장이 지난해보다 20~25% 증가한 600~65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며 이 추세라면 2020년 신차거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고차도 고급 브랜드가 대세= 중국 중고차 시장의 특징은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점이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는 자동차 구입을 제한하고 있는 만큼 여러 대의 차량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1대라도 좋은 것을 사겠다는 소비심리가 강하다. 여기다 중국인들도 자동차의 잔존가치를 고려하며 고급차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중국 매체인 21세기경제보는 "중국인들이 중고차의 가치를 고려하면서 중국 토종 업체가 만든 자동차보다 재판매 가치가 높은 외국산 브랜드가 수혜를 받을 것이고, 이러한 중고차 가격이 향후 차량 구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통계상으로도 중국 중고차의 거래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2012년 중고차 거래단가(거래총액/거래량)는 5만5,000위안으로 2011년 단가 4만9,000위안보다 약 13% 상승했다.

또 산업용 화물차가 거래의 절반을 넘는 서구의 중고차 시장과 달리 중국은 승용차 위주의 중고차 시장이 형성됐다. 중고차 거래량에서 세단형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38.2%에서 2008년 52.1%, 2012년 56.6%로 상승했다. 반면 버스와 트럭의 비중은 2000년 각각 21.5%, 20.7%에서 2008년 18.5%, 15.2%, 2012년 16.4%, 13.7%로 감소했다.

◇블루오션이지만 곳곳에 함정=중국 중고차 시장은 분명 블루오션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덤빌 수도 없는 시장이기도 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매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차량의 잔존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중고차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직영 중고차 판매상들의 영업실적은 신차 판매실적에 비해 초라하다.

국내 업체도 중국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 있지만 성적이 시원찮다. 우선 중국 중고차 시장은 지역별 거래 장벽이 존재한다. 특정 지역에 등록된 차량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행정수속, 인증, 운송 등의 비용이 만만찮다. 또 영세한 중고차 사업자들로 인해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당국의 관리도 미숙하다. 특히 관리감독 당국의 경우 중국의 자동차 산업정책이 유통보다는 제조에 집중돼 있어 중고차 거래에는 관심이 없다. 자동차 할부와 리스, 보험 등 금융도 신차에 집중돼 있다.

다만 이런 장벽에도 중국 중고차 시장은 분명 급성장하는 시장이고 매력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너럴모터스(GM) 중국 책임자 케빈 웨일은 "중고차 시장의 성장이 중국 자동차 시장의 숨겨진 면"이라며 "가족 간에 차량을 물려받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측면에서 중고차 시장이 활개를 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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