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에 '법사위 포비아(공포증)'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입법안이 번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에서 주저앉거나 법사위에서 새로운 논란이 생겨 입법 추진이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8일 관계 당국과 국회에 따르면 세무검증제(성실신고확인제도)를 비롯해 기업구조조정촉진법ㆍ공정거래법개정안 등 주요 쟁점 법안들이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거나 상정 자체가 불발되고 있다. 국회 입법 과정은 크게 '소위→해당 상임위→법사위→본회의'의 총 4단계를 거쳐야 하고 이 중 법사위에서는 법률 자구상 문제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통과를 시켜주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일부 법안은 자구 문제가 아닌 핵심 내용을 이유로 법사위에서 처리가 지연되다 보니 법사위가 사실상의 '상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법안이 세무검증제. 의사ㆍ변호사 등 고소득 사업자는 세무사에게 소득신고가 제대로 됐는지를 의무적으로 검증하는 제대로 소득 탈루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재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제도다. 어렵사리 해당 상임위인 기획재정위 전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율사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법사위에서 "왜 변호사들을 잠재적 세금포탈범으로 몰아가느냐"는 반발이 나올까 봐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판사 출신인 이영애 자유선진당 의원은 지난 7일 재정위에서 "특정 계층에 대해 검증을 실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면서 법사위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입법 추진 중인 기촉법은 해당 상임위인 정무위가 법사위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채권금융기관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릴 경우 주채권기관의 독단이 너무 심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법무부와 법조계가 사실상 기촉법 재입법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올려봤자 의미가 없어 상정 자체를 포기했다는 시각도 있다. 기촉법상 구조조정의 주체가 '채권은행협의회'이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끼어들 틈이 없고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들이 구조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통합도산법을 먼저 내세우고 있다는 논리다. 공정거래법의 경우 법사위에서 1년째 잠자고 있다.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게 골자인데 '율사 논리'보다는 야당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자체가 일부 기업이 현행법을 어기고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는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잘못된 법이라는 입장이다. 법에 막혀 자회사를 판 LG그룹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법사위는 법안심사소위는 물론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어 야당을 설득시키지 못할 경우 법안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