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 "저평가 됐던 유방의 리더십 살렸죠"

초한지 완간 소설가 이문열


“유방은 비루하고 부패한 듯한 인물로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일찍부터 그는 대의와 명분에 민감했으며 임기응변이 뛰어나 중국 제왕의 원형으로 평가될 만한 인물이지요.” 초한지(전체 10권, 민음사) 완간을 기념해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이문열(60ㆍ사진)씨는 유방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역사는 승자의 것으로 유방은 미화되고 항우는 폄하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사기(史記)에는 되레 유방이 시정잡배 같은 인물로 등장한다”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두 사람과 시대를 재평가하면서도 ‘칠푼(七分)의 진실과 서푼의 허구’라는 연의(演義ㆍ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댄 글이나 연극)의 본령을 준수해 재미를 최대한 살렸다”고 설명했다. 한(漢)고조 유방과 초(楚)패왕 항우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초한지는 삼국지와 수호지와 달리 딱히 원전이라고 할 만한 자료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 출간된 초한지는 명나라 종산거사라는 이가 쓴 ‘서한연의(西漢演義)’를 번역한 것이 대부분. “서한연의는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뒤틀어 원전으로 삼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이를 바로잡고 부연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컸어요. 자료를 찾아본 바에 따르면 유방은 정치가로서 대단한 결단력을 내린 사람이지만 그의 리더십은 저평가된 듯합니다.” 이 작가의 초한지에는 유방의 리더십이 특히 부각됐다. 이를테면 광무산 전투에서 가슴에 화살을 맞고 쓰러지면서 군사들의 사기저하를 우려해 ‘발에 맞았다’고 하는 대목은 뛰어난 임기응변력으로 그려진다. 또 음식에 집착한 것으로 기록된 유방에 대해 그는 “‘백성에게는 먹는 것이 하늘이며, 제왕은 백성들이 하늘이니, 먹는 것은 결국 하늘의 하늘’이라고 말한 유방은 민의(民意)라는 무서운 진실을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에 대해 그는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populismㆍ대중주의)의 승리이며 다수의 선택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위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뤄질 수 없는 것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는 위대하지만 민족적 존재 차원의 문제를 결정할 때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분명 끔찍한 일”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있지만 더 고약한 것은 정권의 실수가 너무 커 더 이상 말하기가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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