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최형욱 금융부 차장 choihuk@sed.co.kr "국내 금융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죽느냐 사느냐(Live or Die)' 하는 게임이 돼야 합니다. 금융산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야 한다는 얘기지요."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8일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은행(IB) 육성 등과 같은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 목표들에 관해 일각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제조업에는 강하지만 언제까지 우위를 점할지 알 수 없는 만큼 서비스업을 강화해야 한다"며 "서비스업의 핵심은 바로 금융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하 행장은 이번 글로벌 위기를 교훈으로 삼아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리스크 관리, 수익성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동북아 금융허브의 전제조건인 의료ㆍ교육 시장 개방, 영어 사용 능력, 전문인력 등이 갖춰지지 않았고 단기간에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금융산업 발전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먼 사태 이후 정부의 대응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현재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 회복속도가 빠른 것은 정부가 방어수단(Defense measure)을 잘 취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부의 외화채권 지급보증 조치 등이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국내 은행들은 해외 은행에 비해 자산건전성이 좋았고 자본도 취약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재정ㆍ금융정책이 적절히 나오면서 금융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금융기관 대응력은 어땠습니까. ▲금융 쪽은 전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지난 1997ㆍ1998년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에 대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학습효과를 통해 상대적으로 위기에 잘 대응했다고 봅니다. 자산의 질도 나쁘지 않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정부의 지원책이 나오면서 금융위기 대응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지원은 받고 실물 지원에는 인색한 은행들에 대한 지적이 많았습니다. ▲정부의 지급보증과 자본확충 방안이 시장에 신뢰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 보증을 이용한 사례는 한 건 정도이고 자본확충도 후순위채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금융당국의 정책에 호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 대출 만기연장 등 중요 정책은 다했다고 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은행 등 금융산업에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리스크 관리가 중요합니다. 신용 리스크도 있지만 유동성 리스크, 과도한 가격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해야 합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대형 은행의 자산 규모가 80%나 증가했는데 과도한 자산 증가는 결국 리스크를 많이 안고 가는 것입니다. 국내 은행들도 외형성장과 시장점유율을 중요시하다 보니 '쏠림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은행의 평균 총자산이익률(ROA)이 1%였던 때가 거의 없을 정도로 과당경쟁이 이뤄지는 만큼 수익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과도한 보수 등으로 인한 월가의 탐욕이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과다 보수 문제는 기본적으로 상업은행이 아니라 IB 쪽입니다. 보수 자체가 많고 적은 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보수체계를 정하면서 회사에 과도한 리스크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주주에 부담을 주는 대가로 보수가 커지는 것은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수 자체가 많으냐 적으냐는 시장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이번 금융위기 와중에 영국ㆍ아일랜드ㆍ두바이 등 금융산업에 주력한 나라들이 대부분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금융허브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두바이의 경우 전세계적인 유동성 거품에 의지해 부동산 등에 과도하게 투자한 게 문제였고 영국ㆍ아일랜드도 제조업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금융 비중이 높다 보니 위기에 취약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금융허브를 지향하더라도 제조업과 같이 가야 할 것입니다. 금융업 육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금융위기 이후 영미식 IB 모델은 끝났고 한국적 IB를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유럽도 UBS를 보면 영미식 모델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IB는 유럽이나 영미가 비슷합니다. IB를 육성하려 한다면 궁극적으로 이들 글로벌 IB와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단기간에는 쉽지 않고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대출을 끼고 있는 상업은행도 쉽지 않은데 IB와 경쟁해 바로 이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먼저 국내 IB가 발전하려면 국내 시장이 커져야 합니다. 인재양성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다만 일본에 노무라가 있지만 한국의 저력을 감안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무분별한 유동화 및 파생상품입니다. ▲파생상품의 경우 리스크는 보완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더 육성해야 합니다. 파생상품에 대한 싹을 자르는 것은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예대마진에 주로 의존하는데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수수료 수입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생상품을 보완해야 합니다. 향후 증권화도 좀 더 해야 합니다. 저축률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족한 예금을 채우기 위해서는 대출자산을 유동화하는 것이 좀 더 발전돼야 합니다. -금융위기를 전후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있습니까. ▲위기상황에서 보여주고 있는 우리나라의 성장률과 턴어라운드에는 모두가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글로벌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개인부채가 많고 중소기업 경쟁력 부문 제고 등은 여전히 숙제입니다. ◇ 약력 ▲1953년 전남 광양 ▲1976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1981년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씨티은행 서울지점 수석 딜러 ▲1987년 씨티은행 한국투자금융그룹 대표 ▲1998년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1998년 씨티은행 한국소비자금융그룹 대표 ▲1999년 재정경제부 규제심사위원회 위원 ▲2001년 한미은행장 ▲2004년 한국씨티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