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이 다가올수록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번개(즉석) 모임'이 잦아지고 있다.
선거를 제외하면 충분히 간격을 두고 사람을 만나던 박 당선인의 평소 모습과는 다른 행보다.
1호 인사인 김용준 총리 카드가 불발되고 인선을 비롯해 정부조직개편이나 공약 이행 등 밀린 현안을 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서 풀려는 의지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당선인은 1일 오후 공식 일정으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미 의회 대표단을 접견하고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났다. 그 사이 비공개로 새누리당 부산 출신 의원들과 오찬을, 대구 의원들과 만찬을 했다.
1월31일 오후4시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서병수 사무총장 등을 만났다. 박 당선인이 제안한 이 자리에서는 인선 시기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그는 같은 날 정오에는 경남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 오찬을 한 뒤 2시부터 한 시간 남짓가량 16개 시도지사와 만나 지역공약에 대해 청취했다. 시도지사 오찬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지만 당일 바뀐 것이다.
박 당선인은 특히 연이틀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사청문회 제도와 관행에 대한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했다. 정부조직개편안에 관한 의원들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이나 공약수정론에 대한 반박을 한 것도 오찬자리에서다. 불통 논란이 일 때마다 나타나는 박 당선인 특유의 '밥 정치'가 시작됐다는 얘기도 당 주변에서 나온다.
박 당선인이 이 같은 만남을 선호하는 까닭은 보안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을 잡을 때도 이 같은 태도를 나타낸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전날 연락이 와 다음날 오후에 참석할지 물어보고 만난다고 하면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다"고 전했다.
시간과 장소도 자주 바뀌는 편이다. 1월27일 당선인과 지도부 오찬은 두 차례 장소가 바뀌었고 31일 지도부와의 만남 역시 시간이 두 차례 연기됐다. 그럼에도 31일 모임이 외부에 알려지자 박 당선인 측이 당에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문제는 박 당선인과의 만남에서 자유로운 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전에 공개적인 인선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의원들은 박 당선인과의 오찬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한 의원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혼자 튀는 발언을 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반론을 폈던 일부 인사에게 박 당선인 측이 전화로 질타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날 일정을 통보하는 방식에 불만을 갖는 의원들도 있다. 한 의원은 "하루 전날 연락이 와서 황당했다"면서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는 의례적인 자리라고 생각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