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26> 공무원연금개혁 논쟁과 '공정성의 우선순위'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 새누리당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시작한지난 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로비에서 서울시공무원노조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반대하는 삭발식을 진행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울경제DB

‘답정너’란 표현을 들어보셨나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입니다. 질문이 뭔가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말을 듣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때, 즉 의견이 아닌 정답이 존재하는 상황의 답답함을 토로할 때 ‘상대방이 답정너식 화법을 구사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답정너’로 본다면 상황은 나아지질 않습니다. 의견을 조율 하겠다는 얘기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일 뿐 각기 다른 결론을 내놓고 상대방을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만 하기 때문이죠.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공무원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쟁 역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화’를 향한 의지보다는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면서 되려 극명한 입장 차만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11월 24일 합법 공무원 노조인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 새누리당과 합의한 당정노 실무위원회 참여를 백지화했습니다. 그리고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에 잔류키로 해 정부와 여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공노총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의 조급성과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 어렵게 만들어진 대화창구를 망가뜨려 당정노 실무위원회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며 전체 공무원들의 공무원연금 투쟁기구인 공투본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또 기존의 당정노 실무위원회를 야당과 공투본도 참여하는 ‘여야정노 실무위원회’로 확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공투본과 야당이 요구해온 그리고 여당은 반대해 온 ‘사회적 합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공노총의 이 같은 결정은 정부 여당과 공무원연금 절충안을 도출하기로 잠정 합의한 데 대해 조합원들이 거세게 반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여당, 야당과 공무원 노조가 이렇게 각자의 입장을 고수한 이유는 서로 ‘정당한 것’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성(fairness)과 관련된 이론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공정성은 크게 분배 공정성과 절차 공정성으로 나뉩니다. 분배 공정성이란 결과를 어느 정도 공정하다고 인식하느냐와 관련된 개념입니다. 여당은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현 공무원 연금 제도가 분배 공정성을 해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무원 연금 제도가 이대로 지속한다면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부어야 하는데 이는 일반 국민이 구멍 난 곳을 메우고 있는 셈이니 하루빨리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야당과 공무원 노조는 절차적 공정성을 강조합니다. 말 그대로 어떻게 결정되었느냐에 초점을 두는 것이죠. 이들 역시 개혁의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 당사자와의 협의 절차라고 말합니다. 또한 여당이 연내 추진으로 시점을 못 박은 것은 애초에 협의 가능성을 열어 놓지 않은 처사라며 이를 비판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분배 공정성이냐 절차 공정성이냐, 양쪽이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공정성이 다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선순위의 차이인 것이죠.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누구나 분노하게 됩니다. 그건 일종의 본능입니다. 득실을 따지지 않더라도 불공정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면 ‘옳지 않다’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껏 우리는 갈등 상황을 양 끝에 서 있는 이들의 이익 계산 상황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공무원 연금개혁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토록 첨예한 갈등을 해결하려면 상황을 재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일, 작지만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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