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국무회의 통과 5시간 만에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헌정사상 처음이다.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신청도 함께 제기했다. 진보당의 강령과 핵심세력인 RO의 내란음모 혐의 등을 고려할 때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여당은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야당은 유감을 표시했고 당사자인 진보당은 '민주주의 파괴'라는 격한 용어를 써가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국이 또 한번 혼돈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조짐이다.
정당해산은 단순히 한 정당을 없애는 게 아니다. 진보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10.3%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했다. 헌재의 판단에 따라 국민 10명 중 1명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무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세력이 국회에서 활개치도록 놓아둘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애초에 설립신고부터 접수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이나 내란음모사건 재판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는 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공은 이제 헌재로 넘어갔다. 해산을 명령하든 정당활동을 인정하든 판단해야 한다. 어떤 결정이 나도 정부나 진보당 중 하나는 치명상을 입을 게 뻔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번 해산청구가 우리에게 허용되는 민주주의와 정당활동 자유의 경계가 어디이고 기본질서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데 있다. 헌재의 판단은 이를 결정하는 기본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관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생겼다.
일각에선 "헌재의 조속한 판단"을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경계를 정하는 중요한 사안을 가벼이 처리할 수는 없다. 180일이라는 결정기한을 넘기더라도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해 대다수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또 다른 대립과 갈등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헌재가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