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새 논문서 기존 가설 수정… '21세기 자본' 논쟁 2R

"자본수익률 > 경제성장률, 항상 옳진 않다"
"지난 100년간 소득 불평등 설명하기엔 도움 안돼"
WSJ "결국 오류… 부유세 정책 등 힘잃어" 맹공


'좌파의 록 스타'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자신의 핵심이론에서 한발 후퇴하는 모양새의 새 논문을 내놓으면서 '21세기 자본'을 둘러싼 논쟁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당장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보수언론들은 "피케티의 결론이 오류로 판명되면서 고소득자 누진세, 글로벌 부유세 도입 등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 처방전도 힘을 잃게 됐다"며 맹공을 가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9일 WSJ에 따르면 피케티 교수는 미국 학술지인 '미국경제학회지(AER)' 5월호에 실릴 예정인 '21세기 자본에 대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r>g' 공식이 20세기 소득과 부의 변화를 설명하고 21세기 불평등의 궤적을 예측할 때 유일하거나, 심지어 주요한 수단으로도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케티는 지난해 출간돼 전세계적으로 15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에서 실증 분석을 통해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항상 앞서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일약 좌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당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올해는 물론 앞으로 10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학 서적"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피케티 교수는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이번 논문에서 "'r>g' 공식은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극단적이고 지속적인 부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지난 100년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신 그는 정치적 격변이나 제도적 변화, 경제 발전 등이 과거 불평등 심화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피케티 교수는 지금은 일반 근로자와 최고경영자(CEO) 간의 근로소득 격차가 미국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r>g'는 점점 커지는 근로소득 불평등을 논의하기에 유용한 수단이 아니며 기술ㆍ교육 격차 등 다른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는 "앞으로 r가 g보다 커질 경우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며 "부유세를 강화하는 한편 상속세를 50~60% 부과하고 최상위층은 더 높아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를테면 '21세기 자본'에서 다양한 불평등 심화 요소를 지적했는데도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탓에 주류학자들이 'r>g' 공식에만 주목해 잘못된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게 그의 항변이다.

하지만 주류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피케티가 말을 바꿨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피케티가 지난해 저서에서는 "앞으로 수십년간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앞지르면서 부가 최상위 계층으로 더 집중될 것"이라고 서술했다는 게 WSJ의 비판이다. 반면 이번 논문에서는 "현재 선진국에서 부의 불평등은 100년 전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다"고 분석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WSJ는 "'21세기 자본'은 19~20세기 경제 분석을 통해 미래도 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최소한 책 이름에서 '21세기'라는 말을 빼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피케티는 이번에 부자들의 잘못된 투자·상속 과정에서 부자들의 재산 분산, 정책 변화 등도 'r>g'가 커지기 어려운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올해 초 전미경제학회(AEA) 연차 총회에서 미 경제학계의 거물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앞지르더라도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는다"며 피케티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주장이다. 나아가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본 공급이 증가하면 수익률도 떨어지는 점을 간과하는 등 피케티 이론이 근본적 오류를 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논쟁적인 성격의 새 논문이 발표되면서 피케티의 학문적 결함은 물론 소득 불평등 악화 여부, 분배 정책 등을 놓고 전세계적으로 또 한번 격론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해 5월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세기 자본'이 원천 자료를 결론에 맞춰 의도적으로 재구성했다"며 비난했을 때도 미 언론과 경제학계가 좌우로 나뉘어 입씨름을 벌였다.

최근 '피케티 신드롬'에 휩싸인 한국 경제학계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r>g'는 '21세기 자본'의 핵심내용"이라며 "지금의 근로소득 불평등을 논의하기에 유용한 수단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논문은 현재 'r>g'가 1차 대전 이전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뜻으로 근본 논리가 무너진 건 아니다"며 "흠집 하나로 이론의 큰 틀까지 부정하기는 힘들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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