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장의 안용석 변호사(47ㆍ사시 25회)는 20여년 전 초년병 시절 ‘우유박사’로 불렸다. 그는 89년 광장에 입사한 후 얼마되지 않아 우유업체간 광고분쟁 사건을 맡았다. 당시 우유업체 P사는 신생업체로 기존 우유업체와의 비교우위를 부각하기 위해 4개월간 주요 일간지에 저온살균법으로 처리한 자사 우유가 타사 제품보다 우수하다는 내용의 ‘비교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P사가 과장광고에 의한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다고 판단해 광고중지 및 사과광고 명령을 내렸고, P사는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측은 2년차였던 안 변호사를 선임했고, P사는 당시 고등법원장 출신의 잘 나가던 변호사를 선임했다. 언뜻 보기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수 있었던 소송에서, 안 변호사는 예상을 뒤엎고 2년여에 걸친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결국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그가 뜻밖의 결과를 얻어내자 주위에서는 그의 성실함을 눈 여겨 보기 시작했다. 주위 동료 변호사들은 “안 변호사는 사건을 맡으면 우직하면서도 세밀하게 끝까지 책임지는 성실함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그만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우유소송에서도 그의 성실함은 유감없이 드러났다. 우선 저온살균과 고온살균 제품의 맛은 물론, 수차례의 영양분석 결과와 각계 전문가 의견 등을 취합해 결국 두 제품은 약간의 맛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인 성분에는 차이가 없다는 걸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특히 그는 하나의 소송을 위해 두 제품의 살균과정 등 생산공정을 현장 직원보다 더 정확히 파악하는 등 우유에 대한 전문지식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수준까지 학습하는 열정도 보였다. 법정에 선 상대 변호사도 안 변호사의 막힘 없는 설명에 “흠잡을 때가 없다”며 결국 두손 두발을 들었다. 그는 우유소송을 맡은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유 살균과정을 잘 기억하고 있다. “고온살균 우유는 135도에서 2초만 살균하면 되지만, 저온살균 우유는 65도에서 30분을 살균해야 한다. 저온살균 우유가 살균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렵고, 생산단가도 훨씬 비싸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우유박사’였다. ◇20여년간 공정거래 한우물만=안 변호사는 20여년간 공정거래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온 몇 안되는 변호사 중 한명이다. 안 변호사는 우유광고 분쟁에 앞서 외국 담배회사의 과장광고 사건을 맡았다. 80년대 후반 국내 담배시장 개방과 동시에 몰려든 외국 담배회사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공정위는 외국 담배회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의식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안 변호사는 과장광고에 의한 불공정거래행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영국 담배업체 R사를 대리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이후에야 다급해진 회사가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R사는 공정위 조사때부터 변호사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서, 안 변호사는 공정위의 조사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 과도한 제재를 막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안 변호사는 공정위를 여러 번 드나들면서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상대방으로 만난 공정위가 우유광고 분쟁소송을 안 변호사에게 선뜻 맡긴 것도 외국 담배회사 소송을 맡으면서 그가 보여준 특유의 성실함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담배광고 소송과 우유광고 소송을 잇따라 맡아 좋은 결과를 얻자, 공정거래 분야에서 안 변호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경험을 하나 둘 쌓아온 안 변호사는 외환위기 이후 제대로 된 물을 만났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 많아지면서 기업결합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그는 특유의 협상력을 발휘해 원만한 해결을 이끌어 내 자신의 영역을 완전히 구축하게 됐다. 지난해 아시아로(Asialaw)에서 공정거래 분야 최고 변호사로 선정됐고, 세계적인 법률잡지 체임버스 아시아(Chambers asia)에서도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그의 진면목이 확인됐다. ◇“안되면 되게 하라” 뚝심 발휘=항공업계에서는 ‘얼라이언스’라는 전락적 제휴 방식이 일반화됐다. 각 나라 항공사들이 공동업무 계약을 체결해 상대방 항공사의 좌석을 빌려서 판매하는 방식인데, 이 경우 특정 시간대나 특정노선에 항공편이 없는 항공사는 얼라이언스를 맺은 항공사의 노선을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어 고객 확보에 유리하다. 국내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등과 ‘스타 얼라이언스’ 이름으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고, 대항항공은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등과 ‘스카이팀 얼라이언스’를 운영중이다. 그런데 국내 항공사들이 외국 항공사들과 얼라이언스를 자유롭게 체결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항공법이 개정된 이후부터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항공사들은 공정거래법이라는 규제에 막혀 외국 항공사와 얼라이언스를 맺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여러 항공사들이 상대방 항공기사로부터 빌린 좌석을 고객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우선 항공편 가격을 협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카르텔을 금지한 공정거래법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중국 등 동남아 국가를 비롯한 외국 항공사들은 항공사간 전략적 제휴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 제도에 힘입어 ‘얼라이언스’에 대한 규제를 받지 않았다. 국내 항공사들이 외국 항공사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이 때 안 변호사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안 변호사는 국내 항공사들의 입법컨설팅 의뢰를 받아 항공법 개정안을 마련, 건설교통부와 공정위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정부입법으로 국회를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안 변호사는 “인천공항을 동남아 허브 공항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국내 항공사의 성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얼라이언스에 대한 규제가 풀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건교부와 공정위 양쪽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개정안을 제시한 게 법안이 받아들여진 비결”이라고 말했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그의 뚝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제공정거래ㆍ국제카르텔 등 분야 확장중=안 변호사는 최근 들어 국내기업의 해외M&A가 많아지면서, 국제 공정거래 사건에 관심을 쏟고 있다. 국내외 기업간의 기업결합이 많아지면서 한국 공정위 뿐 아니라 외국 공정위에도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국적 기업간 기업결합이 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안 변호사는 LG와 필립스의 합작사인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설립시 미국ㆍ유럽은 물론 브라질ㆍ남아프리카공화국에 기업결합 신고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국제 카르텔(가격담합) 분쟁도 안 변호사가 맹활약하는 분야다. 안 변호사는 최근 몇 년간 국내외 기업이 연루된 유류할증료 담합, S램 담합 사건 등을 맡아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특히 S램 담합 사건에서는 일본의 엘피다를 대리해 무혐의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안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카르텔을 형성한 혐의가 인정돼 납부한 과징금만 2조5,000억원이 넘는다”며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외국 공정위의 카르텔 규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거래 사건, 특히 기업결합과 관련된 사건은 일반 민ㆍ형사 사건과 달리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며 “항상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다 보면, 순간순간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법시험 합격후 광장에 입사한 이후, 20여년간 광장 공정거래팀의 성장을 이끌어 온 안 변호사. 그를 데려 가려는 경쟁 로펌이나 대기업들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끝내 “처음 몸담은 조직만큼 편한 곳은 없을 거 같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우직함은 공정거래법 분야 ‘거목’으로 커 온 밑거름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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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공정거래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