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노사관계 이대로 좋은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 철저히 지켜져야"

'룰'아닌 '힘'에 의한 노사관계는 신뢰 깨뜨려
勞 '이중 교섭' 방지안 내놔야 산별 교섭 정착"
인플레 낮아져 2년 주기 임협 검토해볼만
임금 인상률 '물가+α'식 관행은 개선 필요

김 동 원 교수

배 규 식 본부장

조준모교수

박 시 룡 논설위원실장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당초 우려와는 달리 노사관계가 안정기조를 보이고 있다. 노사화합선언은 지난해에 비해 3배나 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경쟁력지수는 10여년째 세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법ㆍ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실제 산업현장에 불합리한 노사관행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서울경제는 기존 노사관계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올 법ㆍ제도 개선을 앞두고 불합리한 노사관행 개선을 위해 ‘산업현장 노사관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노사관계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노사, 특히 기업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교섭주기도 2년이상으로 하되 임금 인상률의 경우 물가상승률에 +@ 하는 식으로 하는 등 불합리한 관행개선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참석자 :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박시룡 서울경제 논설위원실장(사회) ▦ 박시룡 실장= 그동안 많은 제도개선이 이뤄지면서 우리나라 노사관계도 많이 발전했지만 국제기준에 비춰볼 때 여전히 후진적이고 낙후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산업현장에 만연해 있는 불합리한 노사관행 중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노사관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조준모 교수= 노조가 파업을 했을 경우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근로자들은 파업기간에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또 파업과정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용자가 제기한 고소ㆍ고발을 취하하도록 하기 위해서 재차 파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용자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임금손실분을 보전해주거나 고소ㆍ고발을 취하해 줍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지속될 경우 불법파업이 계속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 연결고리를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불법파업을 억제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동원 교수= 과거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한 몸체였는데 지금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노사관계가 따로 있습니다. 대기업 노조는 사용자와 담합을 해서 많은 혜택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굉장히 열악합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300인 이상 사업장의 파업은 줄고 있고, 300인 이하 사업장의 파업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일종의 노사관계의 양극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죠. 불합리한 노사관계 유형도 이처럼 기업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규직 노조만 놓고 보면 과다한 노조 전임자 유지라든가 사용자와 담합해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 배규식 본부장= 노동시장의 강자인 대기업 노조의 경우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편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노조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기업들의 경우 지난 2000년 이후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노사관계가 ‘힘의 정치(Power Politics)’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요. 이런 힘의 정치가 노사간의 신뢰관계를 떨어뜨리고 불합리한 노사관행을 많이 낳고 있습니다. 공정한 게임의 룰에 따라서 행동하려는 마인드가 노사 모두에게 부족합니다. ▦ 박 실장= 불합리한 노사관행 중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타결되면 사측이 임금손실분에 대해 보상해주고 심지어 타결 보상금까지 주기도 합니다. 이런 관행은 노조가 파업을 남발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립하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 배 본부장= 현재 노사간 담합구조에서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지기 힘듭니다. 정부가 아무리 감시해도 이면합의를 통해서나 연말에 상여금을 지급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노조에게 보상해주고 있습니다. 이 원칙을 제대로 확립하려면 노사간 담합적 관계나 개별기업의 단기적 이해관계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사용자들이 초래한 겁니다. 파업이 발생해서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면 중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는 판단을 해야하는데 지금 당장 생산물량을 확보해야 하니까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파업을 하면 임금을 못 받는 것은 당연하고, 파업비용을 자체 노조기금으로 충당합니다. 파업이 오래 가면 기금이 줄어들어서 재정이 바닥나기 때문에 노조가 굉장히 시달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단위에서 기금도 없이 파업한단 말이죠. 다른 나라 노동자들은 아예 사용자한테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관행화되고 구조화된 것이어서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힘들겠지만 사용자들이 노조에게 ‘파업기금을 조성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파업을 하더라도 임금보전은 없다’는 시그널을 꾸준히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조 교수= 기업은 늘 경영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단기적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지배구조에 순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시각이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행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사용자들도 통일된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져 파업 참가자의 손실임금을 쟁의기금을 통해 보전해줄 수 밖에 없게 되면 노조는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고, 합리적인 파업 범위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 김 교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노조로 하여금 파업에 대한 위험부담을 없애준다는 것입니다. 파업을 해도 봉급을 받으니까요. 노사가 공히 손해를 봐야 파업이 빨리 타결되는데 노조는 파업을 해도 돈을 다 받으니까 파업이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막아야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용자들은 항상 불평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편의에 의해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법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법으로 ‘무노동 무임금을 안 지키면 사용자를 처벌한다’고 하면 임금 형태로 주지 않고 다른 형태로 주겠죠. 돈 줄 방법은 많습니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해결수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굳이 방법을 들자면 사용자단체가 자체 결의를 하고 원칙을 지키지 않은 기업에 대해 자율제재를 할 수도 있겠죠. ▦ 박 실장= 최근 노조들이 산별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인데 이중교섭, 이중파업이 가능한 산별교섭이 기업들에게 상당히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산별교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 배 본부장= 우리나라는 산별교섭을 기업별 교섭에 부가하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산별교섭으로 대체되면 그동안 기업별 교섭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데 기업별 교섭틀은 그대로 둔 채 산별노조를 덧씌우는 격이니 이런 형태로는 산별교섭이 정착되기 어렵습니다. 노조가 산별교섭을 정말로 원한다면 기업별 교섭처럼 많은 사항들에 대해 규제하기 보다는 임금이나 기본적인 사항만 규제하고 나머지는 기업별 노사협의를 통해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 김 교수= 현재 우리나라 산별교섭은 한 마디로 말해서 상당히 파행적입니다. 힘이 센 노조가 사용자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협상을 요구하는 형국이거든요. 산별교섭이 정착되려면 노조가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됩니다. 상대방도 원할 때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노조만 원하고 사용자는 원치 않는 그런 상황에서는 교섭이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합니다. 독일처럼 한번만 교섭하고 끝내야 합니다. 정말 제대로 된 산별교섭을 하려면 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중교섭을 방지하는 방안을 먼저 내고, 이에 상응해 사용자도 사용자단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화답하는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 조 교수= 몇 년 전 산별노조에 가입한 에어프랑스를 방문해서 사용자에게 ‘한국의 사측은 산별노조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분위기인데 당신네들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우리들은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외국 항공사가 새로 취항했을 때 오히려 산별노조가 사용자측의 이익을 대변해 정부에 목소리를 내고 파업을 벌이는 등 노사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산별체제가 반드시 사측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사측이 주도권을 가지고 집행해야 한다면 산별교섭의 합리화는 노조가 주도권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노조가 사측을 산별체제로 유인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박 실장= 우리는 매년 임금교섭을 하고 2년에 한 번씩 단체교섭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임금교섭 빈도가 많아 비용이 많이 들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대개 임금교섭을 2년마다 하고, 단체교섭은 3~5년마다 하는 등 우리보다 주기가 깁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할 수는 없을까요. ▦ 배 교수= 과거 임금협상을 1년 단위로 했던 것은 우리가 빠르게 성장했고, 인플레이션이 가팔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장률과 인플레가 낮기 때문에 2년 주기로 임금교섭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외국의 경우 5년마다 임금협상을 하더라도 5년간 한번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 임금인상하고 내년에는 ‘물가인상분+1.5%’ 이렇게 정해진단 말이죠. 그런 공식에 따라서 하기 때문에 2~3년마다 교섭을 한다고 해서 노동조합한테 아주 불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교섭비용 절감을 위해 제도개선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 조 교수= GM의 단체협약을 보면 COLA(Costs of Living Adjustments) 조항이 있습니다. 생계비 조정을 일정한 공식(formula)에 따라서 하도록 해서 물가가 크게 오르는 시점에서는 생계유지라든가 실질임금을 반영하기 위해 교섭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노동법에 단체협약 교섭주기 상한선이 2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독일과 미국은 명문화된 규정이 없고, 영국, EU, 스웨덴도 규정이 없습니다. 일본은 3년, 호주는 3년, 핀란드는 4년입니다. 기업별 교섭 위주인 일본과 한국의 교섭시간과 교섭빈도를 보면 일본의 경우 2004~2007년에 평균 교섭빈도가 4회 이하인 경우가 49.6%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4회 이하를 한 경우가 17%에 불과합니다. 교섭시간도 일본은 2시간 미만이 73.8%, 한국은 19.9%입니다. 교섭빈도도 많고 시간도 깁니다. 높은 교섭비용은 기업과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입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이전에 교섭비용을 줄일 수 있는 법·제도 보완이 시급합니다. ▦ 김 교수= 우리나라는 매년 단체교섭을 하게 돼 있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7년짜리도 있습니다. BMW나 폭스바겐, 제록스 등이 그런 기업들입니다. 노동부는 단체교섭 2년 상한선 제한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영세기업의 경우 5년마다 교섭을 하게 되면 5년 동안 임금인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현장의 우려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조가 힘이 없는 작은 기업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한선을 없애더라도 보완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몇 년 이상 장기계약은 COLA와 같은 공식을 적용해 물가인상과 연동해서 임금을 올리도록 한다거나 하면 될 것입니다. 옛날에 정말 못살 때는 ‘매년 협상해서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 박 실장= 2010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됩니다. 이것이 노사관계 선진화로 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노사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짚어주시죠. ▦ 김 교수= 우리나라는 산별노조 전임자 급여를 너무 과다하게 지급하고 있는데 이것을 줄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조의 평균 노조원수가 130명 가량인데 전임자 임금을 완전히 금지해 놓으면 대부분 노조가 살아 남기 어렵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도 GM이나 제록스 같은 기업은 작업장 내에 있는 노조 지부장들한테는 임금을 지불합니다. 너무 틀어막는 것도 현실과 맞지 않고, 어느 정도 절충점을 찾아야 합니다. 무조건 금지한다고 해서 지켜지지도 않습니다. 노사정간의 협의를 통해 줄이기는 하되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 노조의 숨통을 틔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 조 교수=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도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순수하게 조합활동만 하는 전임자에 대해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합니다. 일부 제한적인 보조장치를 두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더라도 금지원칙이 천명되어야 합니다. 복수노조는 허용돼야 하지만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교섭창구 단일화와 교섭단위 문제인데요. 창구단일화 방식은 ‘과반수 대표제’가 노사관계 혼란을 막고 교섭비용을 낮추는 합리적인 방식이라 생각됩니다. 교섭단위 문제는 예외는 둘 수 있어도 사업장 단위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교섭비용의 불필요한 증가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 배 본부장=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노사관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획기적인 제도입니다. 대형 노조의 현장권력을 대폭 축소시키면서 산별노조체제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고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입니다. 보완책으로는 가령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노조는 2년 정도 시행을 유예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조도 기금 같은 것을 마련하는 등 자구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합니다. ▦ 박 실장=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 좌담회가 우리나라의 불합리한 노사관행 개선과 노사관계 선진화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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