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거대 용광로' 이슬람 문명…유럽을 잉태하다

■ 신의 용광로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지음, 책과함께 펴냄)
6~13세기 초 이슬람 유럽서 기독교와 공존하며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 융합된 선진문화 이끌어내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이란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6세기~13세기 초 유럽대륙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했던 시기의 역사를 묘사했다. 이를 통해 현 미국·유럽과 이슬람간 문명 충돌상황에 대한 해법의 단초를 제시한다. 사진은 이슬람 성전.

삼국지(三國志)의 무대가 중국이고 주인공이 위ㆍ촉ㆍ오 3국이라면 이 책의 무대는 6세기~13세기 초 유럽대륙이고 주인공은 무슬림 유럽과 기독교 유럽 그리고 이교도 게르만 부족이라는 3대세력이다. 무슬림 세력의 주역은 아브드 알-라흐만 1세고, 기독교 세력의 핵심은 사를마뉴 대제다. 용광로는 여러 가지 금속을 넣고 끓여서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게 되는 경우의 비유로 이 책은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문명이 발상지인 아라비아 반도가 아니라 유럽 땅에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 신자들을 융합하며 선진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이란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이 시기 기독교 유럽과 이슬람 유럽의 긴장감 넘치던 공존의 역사를 세심한 묘사력으로 전개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슬람간 문명의 출동상황에 대한 해법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퓰리처상을 두번 받았고 미국 뉴욕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저자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유럽에서 공존했던 그 시기를 살펴보며 유럽이 이슬람 문명의 거대한 용광로에서 주조되었다고 말한다. 이슬람과 유대-기독교의 서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전사(前史)쯤 되는 셈이다. 저자는 이를위해 아라비아 오지에서 후발주자로 생겨난 이슬람이 어떻게 월드파워로 성장할 수 있게 됐는지 배경을 살펴본다. 아라비아 반도 변방에서 성장한 이슬람 세력은 711년 침공한 뒤 1085년 패퇴할 때까지 400년간 유럽의 서쪽 끝 알-안달루스(현 스페인)에 정착했다. 종교적 관용을 표방하는 무슬림 사회는 유대교와 기독교 인구를 관대하게 포용했고 그들의 문화를 융합해 선진 문화를 만들어 냈다. 알-안달루스는 이슬람 문명의 거대한 용광로가 됐고 중세 암흑시대 유럽은 알-안달루스에서 대규모로 흘러 들어오는 학문에 의해 자극받고 또 촉진됐다는게 저자의 시각이다. 특히 1085년에 무슬림 점령지대가 함락된 이후에도 약 75년간 기독교, 무슬림, 유대교 사이의 상호 협조라는 '콘비벤시아'(convivenciaㆍ상생)가 있었고 이 같은 이슬람 문명의 '유럽 만들기'는 13세기 초까지 계속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문화적 역할과 정치적 패권이 역전돼 있던 당시의 장구한 역사를 꼼꼼히 검토함으로써 21세기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밝혀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이슬람에 대해 관용을 보이지 않는 현재 서방의 태도는 샤를마뉴 치하의 카롤링거 왕조와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국내에 서양 중세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뤘거나 서양 중세와 이슬람을 대비시켜 문명 비교를 시도한 저서가 많지 않아 6세기에서 13세기까지 중세의 전반기를 다뤘다는 점에도서 차별된다는 평가다. 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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