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수정을 놓고 여권 내부에서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일부 진영에서 재원 문제를 들어 공약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서자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17일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수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박 당선인이 취임 이후 3월 초 본격 가동하는 새 정부에서 공약과 관련된 정책 전반을 조정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등 논란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김용준, 당선인의 경고 전달=김 위원장은 이날 예고 없이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장 기자실을 찾아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는 그의 언급은 사실상 박 당선인의 경고와 다름없다는 게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대선 공약을 수정할 것이라는 보도가 16일 나오면서 박 당선인의 진의가 왜곡돼 전달됐다는 우려가 컸다"면서 "김 위원장이 당선인의 의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먼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고 귀띔했다.
앞서 새누리당에서는 정몽준 전 대표, 심재철 최고위원 등이 공약 수정론을 공식 제기했다. 뒤이어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인수위 간사단회의 결과라면서 "개별 공약이 중복되지 않는지, 지나치게 포괄적이지 않은지에 대해 분석 진단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키웠다.
공약을 지키겠다는 박 당선인의 의지는 확고하다. 대선기간 한 초선 의원이 "공약은 많은데 실천하려니 부담이 된다"는 취지로 말하자 박 당선인은 그 자리에서 "어떻게 공약이 부담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느냐. 국민이(내) 손을 잡으려고 시장에 나와주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면 또 뽑아줬는데 반드시 지켜야지. 그런 자세로 정치를 하겠다고 하느냐"고 질타한 적도 있다.
공약 마련에 참여한 인수위 핵심관계자는 "지방 공약은 공약 예산 추계가 없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현지 실사를 거쳐 내부적으로 예산 추계를 만들었다"면서 "이렇게 준비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내부 반발 여전…첫 내각서 수정하나=인수위 내부에서는 공약 수정 자체보다는 현 시점에 수정을 언급한 시점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수위 간사단회의에서 공약을 진단만 하겠다는 것이지 진단에 따른 처방은 새 정부가 한다는 이야기다.
인수위 핵심관계자는 "인수위는 공약에 대해 결정하는 기구가 아닌데 이 단계에서 수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공약 세부사항에 대한 조정은 새 정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인수위 실무진은 "현재 인수위의 중론은 2월25일 출범할 새 정부의 장관이 주도해 수정한 결론을 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수위가 공약 수정을 새 정부로 넘기는 배경에는 '이명박 인수위'의 경험도 작용했다.
당시 인수위에 참여한 관계자는 "인수위에서 내놓은 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입각한 장관이 일부 킬(거부)했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인수위는 대부분 입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공약 수정을 놓고 내부 엇박자가 심해지면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오히려 일부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고민도 있다. 야당이 공약의 출구전략을 고심 중인 여당을 압박하면서 쟁점사안을 주도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 등은 민주당이 박 당선인의 공약을 입법 발의하는 역발상을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