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9월 8일] 출구전략과 경기 사이클

필자는 요즘 "좋은 때에 오신 것 같아요. 시장도 앞으로 괜찮을 것 같고…"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는 최근 직장을 옮겨 온 것에 대한 축하와 경영성과에 대한 기대감으로 건네는 덕담일 것이다. 가끔 본인의 노력을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섭섭한 면도 있지만, 이 말들은 사실 금융업의 핵심을 잘 나타낸다. 물론 사이클만 잘 탄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주식시장이 회복되면서 코스피지수가 1,600포인트를 넘어섰어도 종목에 따라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체적인 흐름이 긍정적이라도 미세한 부분에서는 많은 부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업은 '사이클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가'가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각 금융기관에서 '위험관리'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결국 많은 선진 금융기관과 우리가 겪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이 사이클 관리의 실패와 관계가 깊다. 또 이제 각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출구전략'도 이 사이클 관리에 있지 않나 싶다. 필자가 경험한 사이클 관리의 예가 있다. 벌써 거의 20년 정도 지난 얘기지만 한 은행에서 주택대출 실적을 보고할 때 어떤 부서장이 A4용지를 세로로 세운 후 그래프를 그려 상관에게 보고 했다. A4용지를 가로로 놓고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세로로 세워 그 증가세를 더욱 가파르게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부서장은 상관으로부터 칭찬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그 상관에게 관련 보고를 받은 회사 중역은 지금 바로 그 주택대출에 상한선을 씌우라고 지시했다. 증가세가 너무 가팔라 과열 징후가 보이는 이쯤에서 식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훗날 그 주택대출은 상당 부분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중역의 결단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주위에 많은 문제들이 사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 원인도 다원적이고 장기적이어서 문제를 푸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분명한 것은 금융은 항상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후행성 산업이다. 주택 경기가 좋으면 은행의 대출은 증가하고 경기가 나빠지면 연체율이 높아지듯이 말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쯤에서 '출구전략'으로 그 과열을 식혀야 하는지의 결정은 고도의 경험과 경륜을 갖춘 최고 경영자나, 정책 당국자의 몫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업과 정부당국의 발 빠른 대응 덕분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다. 출구전략 역시 최대한 충격파를 줄이면서도 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시의성과 효율성이 어우러져 추진될 것임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