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지연·리스크 크다 해외투자자 발길 돌려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쟁이 치열한 나라에 해외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경제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연말에 중요한 선거일정을 앞둔 브라질과 터키, 양안 문제가 주요 정치 쟁점으로 부상한 타이완, 정치세력간의 이해관계로 경제개혁이 지연되고 있는 일본과 아르헨티나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한국의 경우 지난 97년 대선 직전에 타이발 아시아 위기에 휩쓸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미국발 위기를 정치적으로 슬기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 증시가 급락한 후 미국계 펀드들이 투자자들의 자금상환 요구에 대응,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에서 투자자금을 우선 빼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은 오는 10월 대선을 앞두고 당선이 유력한 야당의 룰라 다 실바 후보가 시장경제를 부정하자, 해외투자자들이 대규모로 탈출하는 바람에 헤알화가 급락하고 국채 가산금리가 무려 70%까지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일 브라질에 3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차기 대선 후보들이 고통스런 IMF 조건을 거부할 경우 국가파산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터키 경제불안은 불렌트 에체비트 총리가 오는 11월 조기 총선 실시에 앞서 야당으로 돌아선 케말 데르비스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촉발됐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의 전초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IMF를 앞세워 터키에 11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수혈했지만, 총선전 정치불안을 두려워하는 해외자금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연초에 국가파산을 선언한 아르헨티나는 야당이 고통스런 은행 구조조정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빈사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중남미와 아시아의 이머징 마켓이 선거를 전후해 정쟁이 격화될때마다 주기적으로 금융위기를 겪어왔다는 사실이다.
브라질은 지난번 대선을 치른 직후인 99년초 지방 주지사들이 부채 상환 유예를 선언함으로써 헤알화를 절하한바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형성된 글로벌 단일 시장에는 하루에도 수조 달러의 유동성 자금이 국경을 넘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방대한 국제자본은 정정 불안으로 리스크가 높은 나라에서 갑자기 이탈하고, 90년대 후반 이후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정치갈등과 직결되고 있다. 95년 멕시코 위기, 98년 러시아 위기도 정정불안이 배경이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에선 연말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의 과거 전력을 문제삼으면서 신용의 위기가 가중돼 해외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일본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자민당내 보수세력의 반대로 예금부분보장제를 비롯, 개혁 노선에서 후퇴하자 니케이 지수가 최근 18년만에 최저치에 근접하고 있다.
뉴욕 월가에선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최근 미국 펀드들이 상환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국 시장을 예외로 두지 않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쟁이 격화되면서 현정부의 개혁조치가 지연되고, 차기정부의 경제노선이 불투명한 상황이 해외투자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