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금융위기 재연 전주곡?

루블화 가치 사상 최저치 경신
유가 급락·지정학적 갈등 등 대·내외 상황 1998년과 유사
제2모라토리엄 선언 할수도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지면서 러시아 경제가 지난 1998년 겪었던 금융위기에 또다시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를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선언 지경까지 몰고 갔던 대내외 변수와 현재 러시아에 닥친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2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24일 국제외환시장에서 루블화는 장중 한때 달러당 42.0092루블을 기록, 처음으로 42루블을 돌파하며 통화가치가 사상 최저치까지 추락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러시아 신용을 부적격 등급까지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감이 반영된 이날의 루블화 하락은 이후 S&P가 현재의 'BBB-'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소폭 반등, 달러당 41.8085루블에 마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그에 따른 서구권 제재의 여파로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 21% 넘게 떨어졌다. 글로벌 주요국 중 가장 하락세가 두드러진 통화 가운데 하나이지만 국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1998년(-71.1%) 당시보다는 양호한 수준이다. 그러나 미 육군사관학교의 로버트 퍼슨 국제관계 및 비교정치학 부교수는 최근 모스크바타임스 기고를 통해 "1998년 당시와 현재 러시아가 당면한 위기에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며 "러시아는 1998년이 준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퍼슨 부교수가 든 한 가지 유사점은 유가 급락이다. 1998년 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촉발한 2차 석유전쟁의 영향으로 30% 넘게 떨어졌다. 올해도 국제유가는 글로벌 경기 부진 등의 영향으로 17% 넘게 하락한 상태다. 퍼슨 부교수는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인 에너지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러시아 국고에 달러가 덜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라며 "러시아의 경제난은 매번 유가 하락과 맞물려 진행돼왔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점도 1998년과 비슷하다. 당시 러시아는 체첸과의 대립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지출을 해야만 했다. 퍼슨 부교수는 "올해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체제 유지비용 때문에 4,5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이 순식간에 바닥이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제재 조치로 러시아 주요 은행 및 기업이 서구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러시아 외환보유액의 급속한 증발은 제2의 모라토리엄 선언을 야기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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