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신용등급이 올 들어 두번째로 강등돼 국가 재정운용에 다시 한번 비상등이 켜졌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가 그리스ㆍ스페인ㆍ키프로스에 이어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구제금융 자금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을 최초로 시사하기도 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이탈리아에서 발행하는 국채의 신용등급을 기존 A3에서 Baa2로 두 계단 강등한다고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무디스의 신용체계에서 Baa2는 정크 등급(Ba1)보다 겨우 두 단계 높은 수준으로 신흥국 브라질이나 카자흐스탄과 같은 위치다. 무디스는 이탈리아의 향후 등급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제시해 추가 강등 가능성도 내비쳤다.
무디스가 바라본 이탈리아 경제의 앞날은 한마디로 내우외환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10.1%인 실업률도 더 치솟아 재정건전화에 암초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연례보고서에서 올해 이탈리아 GDP 성장률이 -1.9%를 기록하는 한편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도 올 125.8%에서 내년에는 126.4%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무디스는 또한 "그리스의 불안한 정치상황이 유럽 재정위기를 악화시켰고 스페인 또한 추가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EU 정상회의에서 5,000억유로 규모의 유로안정화기구(ESM) 자금을 폭넓게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각종 돌발변수가 한꺼번에 터질 경우 이 정도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무디스의 예상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2일 뉴욕외환시장에서 유로당 1.2203달러에 마감한 유로화 환율은 13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장중 유로당 1.2167달러까지 밀리며 2010년 6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최근 6%를 넘나들고 있는 이탈리아 10년물 국채금리도 당분간 더 오를(국채 값 하락)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보통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지급하는 이자가 치솟게 된다. AMP캐피털마켓의 셰인 올리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치솟아 유럽 공포가 다시 한번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경우 천문학적 부채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무디스는 2012~2013년 이탈리아가 채무상환 등을 위해 매년 4,150억유로를 조달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GDP의 25%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자가 1bp(0.01%)만 뛰어도 매년 4억1,500만유로(5,80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탈리아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한다면 독일이나 그리스가 이탈을 결심했을 때보다 경제성장률이나 재정수지 면에서 더 많은 이익을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그리스보다 이탈리아가 더 먼저 유로존을 떠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