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연구소 시사진단] 미래전략산업 육성방안

▲참석자 명단= 김상열 산업자원부 생활산업국장, 최영락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양흥준 LG생명과학 사장,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 정희수 서울경제연구소장(사회) 서울경제연구소와 대한상공회의소 공동주관으로 열린 미래전략산업 육성방안에 관한 시사진단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6T` 산업이 미래에서 차지할 비중에 비해 연구개발(R&D) 예산은 너무 작다고 입을 모았다. 또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단기적 결과보다는 장기적인 과정에 초점을 두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를 뒷받침하는 평가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정부가 각자의 역할분담을 명확히 해 미래 국가산업의 지도를 그려내는 게 새 정부의 가장 우선적인 임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최근의 논의가 미래 전략산업에만 치중해 전통적인 주력산업을 소외시켜서는 곤란하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 했다. ▲정희수 서울경제연구소장=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은 과학기술의 혁신에 좌우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새로 들어설 정부도 신기술 전략을 세우는 데 역점을 두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습니다. 정보기술(IT), 생명기술(BT), 나노기술(NT), 환경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문화기술(CT) 등 이른바 6T 전략산업의 성공요인을 크게 돈, 사람, 정책으로 나눠볼 수 있겠는데, 이번 서울경제연구소 설문조사 결과 세 가지가 모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6T를 골고루 육성해야 하느냐, 핀란드처럼 한두 분야에 집중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 우선 한정된 연구개발(R&D)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검증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연구비만 지급되면 실패하는 연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신기술일수록 성공확률은 10% 이하인데, 우리의 현실은 항상 100% 성공이라는 것을 꼬집은 말입니다. 벤처도 처음부터 성공확률이 5%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10%라도 성공할 수 있으려면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리의 중점을 둬야 합니다. 국가정책의 올바른 방향에 관해서는 이런 비유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국가가 야산을 개발해 길을 닦고 치안을 유지하고 깨끗하게 청소해 주면 사람들이 자기 돈을 들여 가게를 열고 장사를 잘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그런 역할 대신 가게를 열라며 돈을 빌려주면 길도 없고 치안도 부재하고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다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새 정부도 임기 내에 어떤 결과를 내려고 서두르기보다는 10년 뒤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의 정책을 폈으면 합니다. ▲양흥준 LG생명과학 사장= 과학기술 전략을 논의하는 위원회나 회의에 가보면 너무 추상적인 문제만 다루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과학기술만 너무 강조하는데, 과학기술과 산업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자동차, 미사일, 약을 잘 만들면 거기에 모든 기술이 들어 있습니다. 또 정부에서 일을 추진하다 보니까 공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앉아 두터운 보고서를 만드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분야에 지원을 하면 되는 것이지, 꼭 정부주도로 IT, BT 하는 식으로 분류해 전통산업을 차별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김상열 산업자원부 생활산업국장= 우리의 한정된 투자규모로는 특정산업에 집중하지 않으면 선진국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물론 신기술 산업이 형성될 때까지 전통산업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부 내에서도 그 때가 2007년이냐 2010년이냐 하는 등의 의견이 분분하긴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혁신 성장형으로 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인 겁니다. 정부는 민간이 선도적으로 나갈 수 없는 분야를 담당해야 합니다. 새 정부도 연구개발 시스템을 점검할 계획인데,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과연 무엇일지 지속적인 의견수집이 필요합니다. ▲최영락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한국은 미국과 달리 과학기술을 어떻게 육성ㆍ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논의 자체가 중요합니다. 정부가 자꾸 첨단산업만 얘기하다 보니 주력 전통산업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인식되는데, 전통산업은 아직도 핵심적으로 중요합니다. 다만 지금의 첨단기술에 대한 논의는 10년 앞을 내다보자는 뜻입니다. ▲양 사장= 한가지 경험을 말씀드리면 `테크놀러지 푸쉬`, 즉 기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드는 제품은 100% 실패합니다. 반대로 `마켓 풀`, 즉 시장이 원해서 만드는 제품은 100% 성공합니다. 좋은 기술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개발해야 합니다. ▲김 국장= 정부가 하고자 하는 바도 그런 것입니다. `국가기술 지도`도 앞으로 이런 기술이 유용할 테니 참고하라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기업의 몫이죠. 다만 너무 시장ㆍ수요 중심으로만 하면 가는 속도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최 원장= 과거에는 주로 산업, 혹은 국가 단위의 총론적이고 공급 측면에 관한 논의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개별 아이템의 시대입니다. 예컨대 과거와 같이 조선산업을 육성하자는 식이 아니고 TFT-LCD와 같은 아이템에 대해 논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템을 만드는 것은 기업의 역할이지만, 그 인프라와 시스템을 깔아주는 것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마치 공급자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데, 결국 열매는 기업이 따게 됩니다. ▲김 국장= 정부 역시 `마켓 풀`에 의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만 정부나 다른 부문과 함께 할 때 더 효율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최 원장= 6T 첨단기술을 논의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기본 밑그림이 명확한가의 문제는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왜 한국은 산업정책이 없느냐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은 없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한정된 R&D 투자를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말하는데,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정부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는 노력을 안해서가 아니라 써먹을 수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집중도 항상 수요와 병행해서 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R&D 예산이 자꾸 제품에만 치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연구소에서 실용성을 지향하는 것은 좋지만 아예 공장으로 옮겨가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안된다는 뜻입니다. 지난 30년간은 과학기술적으로 성공적인 시기였습니다. D램이나 CDMA, TFT-LCD와 같은 세계일류 상품이 나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술정책의 내용과 시행방식에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의 핵심은 기술 표준이나 최고의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능력이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R&D 방식으로는 이것이 힘들어 보입니다. ▲정 소장= 최 원장이 말씀하신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데, 우리의 과학기술 인재양성 시스템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 공통된 지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교육비가 GDP 대비 7%로 교육열만큼은 세계 1위입니다. 기반만 잘 마련되면 10년 뒤에는 인재 부문도 남부러워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과거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학교육을 전면 개혁한 핀란드는 국민 개개인이 디자이너, 컨설턴트, 엔지니어나 다름없는 소강국입니다. ▲안 사장= IT업체를 경영하다 보니 대졸 사원들이 참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더군요.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으로 토론이나 팀워크 형성에도 문제가 있고 전공자인데도 전문지식이 형편없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런 문제는 부족한 숫자만큼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는 정량적 접근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즉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김 국장= 기업과 대학의 수요ㆍ공급이 서로 어긋나고 있고 산학 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도체 분야의 인력부족이 2010년까지 6,000명이고 또 잘못 배치된 인력이 20만명 정도일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업에서 재교육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인재양성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국 공대학장 회의나 산학연 연계 프로그램들을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지역산업의 핵심을 이끌어가는 클러스터를 통해 창업, 금융, 마케팅 등 여러 요소를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산학연 연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 원장= 정부에서 시스템온칩(SoC)만 중요하다고 하니까 D램 반도체 종사자들이 `우린 별 볼 일 없다는 얘기냐`고 불평한다고 합니다(웃음). 주력산업 쪽에 그런 느낌을 주는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 사장= 미국의 존슨앤존슨 같은 회사는 직원들의 단기적인 성과는 전혀 평가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회사에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를 평가합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산업계에서 그런 평가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다면 국가 공무원에게도 도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새 정부는 여기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인터넷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채널도 잘 발달돼 있지 않습니까. ▲정 소장= 산자부에서 지역 클러스터를 다수 운영한다고 하는데 너무 많은 곳을 열어서 자원을 분산시킬 게 아니라 하나라도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 국장= 지역 클러스터 하나가 생기면 그 곳에 모든 것을 넣어서 집중하는 것도 효율적입니다. 여러 분야가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최 원장= 지역간 불균형을 지역 클러스터로 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 포인트로 해서 주도하게 할 것인지, 새 정부에서는 여기에 대한 좋은 답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양 사장= 현재 우리의 주력산업을 보면 왜 우리경제가 세계 11~12위권에 위치해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이 정도면 4~5위 쯤은 해야 하는데 말이죠. 바꿔 말하면 몇몇 회사만 잘 하고 나머지는 뒤죽박죽이란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안 사장의 지적처럼 R&D는 5%만 성공해도 잘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R&D 계획을 짜고 집행하는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관료적이고 기계적인 균형에만 치우쳐 있습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형식적인 위원회를 통한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 소장= 과학기술에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업계 측의 주장도 있었지만, 사실 신기술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주는 벤처도 매우 중요합니다. 새 정부가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벤처가 첨병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되는데요. ▲최 원장= 벤처가 초기에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졌다가 또 필요 이상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벤처 정책은 기술혁신기업 차원의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즉 신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혁신 중심으로 벤처 정책을 세우고, 나머지는 시장 매커니즘에 자연스럽게 맡겨야 합니다. 나라가 좁아서 그런지 몰라도 한번 실패한 벤처인은 영원히 퇴출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계속 도전해서 좋은 뜻을 살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인 바탕을 마련해 줘야 할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실패와 재기가 계속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안 사장= 우리 국민 정서가 실패를 마치 전염병 대하듯 합니다. 제도적으로도 풀어야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도 사고의 전환,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벤처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벤처 그 자체가 목적이 됐기 때문입니다. 벤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일 뿐인데, 벤처를 세우고 난 뒤 기술을 만들겠다는 것은 안됩니다. 산학연 연계가 잘 안 되는 것은 모두가 단기적인 성과에만 관심을 둬서 서로의 이해가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벤처와 산학연 모두 과정에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양 사장= 벤처의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돈버는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게 `벤처를 평가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벤처는 1,000명이 안된다 해도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단 1명이 한다고 하면 하는 겁니다. 그런 벤처를 어떻게 제3자가 평가할 수 있습니까. 과거 신용기금 같은 곳에서 투자하는 것을 보면 정치적으로 힘있는 사람에게만 돈을 대주는 등 엉터리로 운영된 게 많았습니다. 돈을 벌려면 제대로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최 원장= 예산과 관련해 지적하고 싶은 게 세가지인데, 첫째, 예산이 너무 R&D부문에는 치우치고 인력과 인프라에는 소홀한 감이 있습니다. 둘째는 정부 돈을 투자해 나오는 결과물이 어중간한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하나를 만들어도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는 선택과 집중 못지 않게 수요지향적인 차원과 연결시켜 정부예산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R&D 예산 자체를 늘려야 합니다. 63년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총 R&D 예산이 1,200억달러인데, 이웃나라 일본의 1년 예산 1,300억 달러에도 못 미치고 미국에 비하면 반년치밖에 안됩니다. 산학연도 당위적인 차원의 협동이 아니라 기업이 나서서 끌어줘야 합니다. 기업이 메리트를 느낄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미래에 대한 씨앗을 뿌리고, 인프라를 깔고, 여러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잘 기획하되, 항시 수요지향이라는 시각을 버려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정부 예산을 제품 개발에 너무 깊이 투자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정부는 무릇 전체 틀을 조정하면서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정 소장= 예산 확대와 연구관리의 효율화, 우수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마련, 미래 소비자의 니즈를 감안한 실용적 접근, 차세대 성장을 위한 정부차원의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 수요자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 마련, 산학연과 정부 간의 명확한 역할분담, 미래지향적인 평가시스템 등이 과학기술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신바람나는 기업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바탕이라는 게 오늘의 결론인 것 같습니다. 지난 세대가 갖고 있는 무기는 그대로 살려나가지만 지금은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의 시대로 점프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를 마련하는 게 새 정부의 가장 우선적인 숙제라는 말로 오늘 좌담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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