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조 여왕·살림 달인… 선비 아내의 자격

선비의 아내
류정월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조선의 선비는 첩을 두는 이유도 구구절절 다양했다. '태평한화골계전'에 등장하는 한 선비는 기생에게 빠져있음을 다그치는 아내에게 "부인으로 말하면 서로 공경하고 서로 별다른 뜻이 있으므로 존귀하여 함부로 욕정을 풀 수 없으나, 창기에 이르러서는 정에 맡겨 욕심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답했다가 "내가 언제 존경해달랬소?내가 언제 특별 대우 해달랬소?"라는 원망을 듣는다. 같은 책에 등장하는 또다른 선비는 첩을 두고자 아내를 구슬리며 "내가 첩을 두려는 것은 당신을 소홀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당신을 높여주려는 것이고 장차 당신의 수고를 대신하게 하고 당신의 일을 맡아 하게 하려는 것"이라 했다. 물론 그의 아내는 "편안하고 싶지도 않고 또한 높아지고 싶지도 않소"라 답했다. 조선 후기 무신인 노상추는 변방 생활에서 얻은 첩을 고향으로 데려와 따로 거처를 마련해 주고 파견 근무 때마다 첩을 데리고 간 것은 생활의 불편함 때문이었지 부인에 대한 소홀함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선비들은 평생을 함께할 부인에게는 '공경'을, 예를 갖추지 않고 얻은 첩에게는 '애정'을 주었던 것이다.

책은 조선 여성들의 결혼 생활을 현대적 관점으로 살펴보고 있다. 다양한 문학 사료를 인용해 선비의 아내로 평생을 보내야 했던 평범한 조선 여성들의 일상을 추적했다. 혼인,사랑,첩에 대한 질투,집안 살림과 경제 활동,남편 내조,출세를 위한 헌신,여가 생활,재난 극복,죽음 등 9가지의 주제를 다루면서 당시 사회적 제도와 여성의 역할까지 내밀하게 들여다 봤다.

조선 시대에는 보통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양반가의 이상적 사윗감은 출세의 가능성이 중요했으나 이상적인 며느릿감은 실제 집안일을 이끌어 갈 '살림 능력'을 갖춰야 했다. 송시열은 '계녀서'를 적어 결혼하는 큰 딸에게 생활인으로 지켜야 할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챙겨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시집 온 아내는 불평등을 감수하며 오로지 남편의 안위를 먼저 챙겼고, 밤 공부가 효율적이고 집중이 잘 되니 다른 거처에서 따로 밤을 보내는 것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저자는 조선의 여성을 불쌍하고 가엾은 희생양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가장의 책임을 방기하는 남편 대신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감당한 사람"이거나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자존감과 자부심을 유지한 여성"으로 볼 것을 강조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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