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요즘 미국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델타ㆍ컨티넨탈ㆍ노스웨스트 등 미국 항공업체들은 이라크 전쟁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겹악재로 전세계 항공사들이 몸살을 앓았던 지난 2ㆍ4분기에 흑자로 전환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문제 삼아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해 44.29%라는 고율의 상계관세를 물린 미국정부가 천연덕스럽게 자국의 항공업체를 재정 지원한 덕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3억9,800만달러를 지원 받은 델타항공은 2ㆍ4분기 순이익이 1억8,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1억8,600만 달러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고, 노스웨스트도 2억900만달러를 정부로부터 지원 받아 2ㆍ4분기 순이익이 2억2,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가 2001년 9월 테러참사 이후 항공사들에 지원한 돈은 모두 69억 달러나 된다.
미국 정부가 문제삼은 하이닉스 채권은행단의 출자전환액인 1조9,000억원에 비해 무려 4배가 넘는 금액이다. 게다가 하이닉스에 대한 출자전환과는 달리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이었다는 점에서 `불륜`의 정도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자국 항공업계에 대한 지원이 교역상대국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화법대로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시장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하이닉스 때문에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경영난이 가중됐다”는 논리를 적용하면 미국정부와 항공업계의 `불륜`은 자명하다.
은행의 상업적인 판단에 따른 16억달러규모의 출자전환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만성적자를 내면서 힘겹게 연명해 가고 있는 하이닉스와 정부로부터 69억달러의 재정지원을 받은 미국항공업계를 보자. 누가 `불륜`이고, 누가 `로맨스`인가.
자국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뚜렷한 명분 없이 베트남산 메기에 64%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몰염치, 후세인을 생포하겠다며 이라크 양민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편향된 인류애. 세계 곳곳에 확산되고 있는 반미(反美)주의는 자업자득인 셈이다.
<문성진(산업부 기자) hns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