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수산식품부ㆍ지식경제부ㆍ행정안전부 등 정부 각 부처가 물가관리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쌀ㆍ라면ㆍ돼지고기 등 식품류와 통신료ㆍ의료비 등 서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50개 품목을 정부의 해당 부처가 관리하고 그 내용을 청와대 등에 보고하도록 결정됐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이 같은 관리방안을 마련했는데 이는 막연히 ‘물가관리에 노력한다’는 수사 대신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해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통령 질책에 다급해진 정부=정부가 식료품ㆍ통신 업체 등의 반발이나 ‘1970년대식 가격 통제’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생필품 물가를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질책이 연일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서민 물가 불안을 방치했다가는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고 오는 총선에서도 과반수 확보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 때문에 정부는 물가 대책을 올 들어서만 7차례나 내놓았다. 정부는 21일에도 과천청사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물가 안정을 위해 곡물, 농업용 원자재, 석유제품 등 82개 품목의 할당관세를 조기에 인하하기로 했다. 휘발유ㆍ경유 등 석유 제품의 실질 관세율을 대폭 낮추고 국내 제품의 가격 인하를 위해 가공용ㆍ사료용 원료, 커피크림 원료 등에 붙는 관세율을 무세화(無稅化)하기로 했다는 게 기본 골자다. ◇각 부처 해당품목 특별관리=이날 회의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점은 주요 생필품에 정부 소관 부처별로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부분이다. 사실상 각 부처에 개별 품목별로 책임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해당 품목이 많아 관리에 큰 부담을 안게 된 농림수산식품부와 지식경제부 등은 이 같은 결정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부는 특별관리대상 50개 품목은 통계청의 자료를 토대로 소비자ㆍ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반영해 선정하고 오는 25일 국무회의 이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부처 맨투맨식으로 물가관리에 나서도록 결정한 것은 최근 가격 급등이 비용요인뿐 아니라 매점매석 등 다른 요인들에도 있고 이를 관리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철근의 경우 국세청 직원 등이 투입돼 조사한 결과 매점매석 행위가 적발됐고 이를 바로잡자 톤당 78만원선에서 3만~4만원 떨어졌다는 게 정부의 한 관계자 설명이다. ◇식품업계 등 가격 통제 우려=정부는 이 같은 품목 관리가 가격 통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각 부처가 품목을 관리하게 되면 생산업체나 생산자 단체 등은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식품 업계는 원자재가격 폭등과 유가인상 등으로 인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정부에서 이처럼 강공책을 들고 나옴에 따라 좌불안석이다. 정부의 방침을 무시하면 자칫 서민 생활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물론 가격 통제 등의 강제적 가격인하보다는 수급조절로 적정 가격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비용요인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시장의 비효율성을 개선함으로써 가격 상승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며 “시장친화적 방법으로 가격을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수급 불안 품목에 대해서는 정부 비축 물량을 풀거나, 매점매석 행위 등을 단속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업계의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