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트레이딩 센터'에 가보니…

금융허브 최전방 전사 키운다

KAIST 금융전문대학원 학생들이 트레이딩 센터에서 각각 가상의 은행(원 테이블이 하나의 은행)을 맡아 각종 데이터와 기술적 분석모델 등 이론을 접목한 전략을 활용해 모의 투자를 하고 있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올 상반기 금융회사 A는 투자자와 시장을 면밀히 관찰한 뒤 자산과 위험을 분산해 합리적인 기대수익을 기대하는‘블랙 리터만’(Black-Litterman) 이론을 적용해 국내 주식에 10억원을 투자했다. 수익률은 두 달도 안돼 30%를 넘었다. 팀원이 받은 성과급은? #B은행은 같은 기간 통계 그래프의 움직임을 살피는 기술적 분석 지표‘골든 크로스’전략을 도입했다. 1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아까운 원금이 사라졌는데 도리어 지휘통제본부는“돈을 잃었으나 더 값지고 좋은 것을 얻고 배웠다”고 팀을 칭찬했다. 금융회사 A와 B은행은 사실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대학생 팀이다. 투자금액 10억원도 손으로 셀 수 있는 돈이 아니라‘가짜’(모의 지폐)다. 성공한 A가 받은 건 빛나는 A학점, 실패한 B가 얻은 건 담당 교수의 애정어린 조언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융전문대학원이 개설한 과목‘증권시장 분석 및 거래전략’의 수업 현장이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수업은 KAIST의‘트레이딩 센터’(Trading Centre) 덕분에 가능해졌다. 올 초 문을 연 트레이딩 센터는 국내 교육기관 최초이자,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금융 실습 교육 시설이다. 투자은행(IB) 등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환경에 맞서 싸울 금융 전사(戰士), 정부가 추진중인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을 뒷받침할 고급 금융 두뇌를 키워내는 곳이다. 트레이딩 센터의 핵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프라(기반). 로이터의 지원(1,500만불)으로 세워진 센터엔 고금(古今)의 모든 파이낸스 관련 데이터와 전세계 시장 정보, 각국의 기업 정보 및 애널리스트 분석, 실시간 뉴스 등이 공급된다. 또 전문 투자가용 정보서비스 ‘3000Xtra(V.5.0)’와 국제금융거래의 필수장비로 알려진 딜링 머신(Dealing Machine), 위험관리 시스템(콘돌) 등 20여 종류의 시스템 및 서비스도 있다. 실제 투자전략으로 쓰이는 기술적 분석모델만 수백가지다. 쉽게 말해 전장(戰場)인 금융기관의 현업과 동일한 수준의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것. 즉 금융대전에서 필승하기 위한 온갖 병법(兵法)과 적에 대한 세세한 정보, 전략 시뮬레이션을 갖춘 셈이다. 센터는 하나의 글로벌 마켓이고, 곳곳에 둥그렇게 마련된 6개의 공간(서버)은 경쟁하고 협력하는 각각 하나의 금융회사(은행 증권 등), 데스크는 지휘통제본부다. 실제 돈만 안 오간다 뿐이지 학생들은 강의로 무장한 이론을 조사 분석에 이어 전략을 세우고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일정 테스트를 통과한 뒤에 받게 되는‘3000Xtra 수료증’은 ‘실전 투입 가능’을 뜻한다. 현재는 실시간 국내 증권시세를 전송 받아 주식 및 주가지수 선물/옵션을 거래(모의 트레이딩)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외환, 외국 주식 관련 모의 투자로 확대할 계획이다. 강장구 KAIST 금융전공 교수는 “외부에서 기부 받은 돈(SIFㆍStudent Investment Fund)을 직접 투자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고급 금융인력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보통신(IT)경력을 금융으로 전환하기 위해 올 2월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한 이윤지(여)씨는 “수업은 힘들었지만 ‘데이터는 이렇게 찾는구나, 분석모델은 이토록 많구나’ 하는 걸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우리 팀 전략에 확신이 생겨 주식에 직접 투자했는데 돈도 벌었다”고 귀띔했다. 내년 2월 졸업자 중 구직희망자(14명) 대부분은 금융회사 2곳 이상에서 ‘러브 콜’을 받은 상태. 이효섭 센터 조교는“모든 재무정보와 분석모델을 활용해 현장에선 선뜻 할 수 없는 전략까지 실제 써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센터 담당 직원 강미선(여)씨는 “세계 유명 MBA 수준 이상의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다는 입 소문이 나면서 외국의 석학들도 연구 및 후학 양성을 위해 KAIST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산업은 결국 두뇌지식기반 서비스다. 외국에서 내놓은 금융상품을 사들여 마케팅 하는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선 인프라 구축 및 인재양성에 대한 투자가 급선무다. 이 점에서 KAIST 트레이딩 센터는 금융 최전방 요원을 배출하는 특급 훈련소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