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산 식품 수입장벽 낮춰주세요"

유럽계 기업 규제완화 요구유럽계 다국적기업의 한국지사장 미쉘(가명ㆍ36)씨. 한국생활 4년째인 그는 출장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올 때마다 짐 꾸러미 속에 치즈를 숨겨 온다. 미쉘씨는 "한국인들이 김치 없이 살 수 없듯이 나는 치즈 없이는 못 산다"며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갈 때 짐 속에 김치를 넣어 가는 것과 똑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유럽계 기업들이 유럽산 식품에 대한 수입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정부에 강력하게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크게 ▦한국 검역 기관들이 외국 식품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식품 수입 규정이 미국산 제품 위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검역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산 자연 치즈. 곰팡이와 대장균이 섞여있는 자연 치즈는 까다로운 국내 검역 기준을 맞추지 못해 영락없이 공항에서 들어오지 못한다. 하지만 치즈에 곰팡이 제한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이다. 치즈전문점 엔치즈닷컴의 이영미 사장은 "치즈는 한국의 발효 식품인 된장과 비교할 수 있다"며 "질 좋은 치즈에는 당연히 곰팡이가 들어있으며, 이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세계인들이 명품으로 꼽는 블루치즈는 제조 과정에서 일부러 페니실린을 주입한다. 이에 반해 미국산 치즈들은 살균처리 한 우유를 가공해 만든 진공 포장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유통기한도 길고 검역과정에서도 문제되지 않는다. 치즈마니아들은 하지만 미국식의 가공 치즈류는 '진정한 치즈'가 아니라고 일축한다. 이 사장은 "최근 한국에서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치즈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며 "외국인 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다양한 고급 치즈를 찾기 시작했다"고 현황을 설명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식품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재용 구르메 F&B코리아 상무는 2년 전 고급 버섯 종류인 트러플을 수입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회상하며 외국 식품에 대한 국내 검역 관계자들의 이해 부족을 지적했다. 트러플은 1kg에 수입원가만 12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식품. 당시 시험적으로 3kg을 수입해왔지만 검역 기관에서는 테스트를 위해 1kg 분량을 갈아 성분 분석을 했다. 서 상무는 "해외에서 흙이 들어오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미국도 트러플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화분과 함께 들여오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며 "국내도 외국산 식품에 대해 융통성 있게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역 테스트 소동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또 다른 문제는 유통기한이다. 트러플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서 상무는 "일본은 트러플이 오전에 공항에 도착하면 당일 모든 신고절차가 끝나 오후에는 주방에서 요리되고 있지만, 한국은 모든 신고 절차가 끝나려면 3일이 지나야 한다"며 "이동 시간과 신고기간을 모두 빼면 한국에서 트러플의 유통기한은 하루 밖에 안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검역기준을 통과하더라고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식품 수입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수입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수입 품목별로 검역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식품을 수입하려면 수입신고서와 성분분석표, 성분배합비율, 제조공장과 주소, 유통기한, 한국어표시상표에 검역증까지 제출 서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같은 식품 종류라도 품목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어, 때로는 300∼500장의 서류가 필요할 때도 있다. 서 상무는 "다양한 식품들이 한국에 수입돼야 한국 식품 제조업체들의 경쟁력도 늘어나고 제품 개발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며 "일본은 치즈의 종류인 카망베르를 직접 제조해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계 기업의 한 관계자 역시 "서울은 상하이보다도 외국 식품을 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서울이 국제도시로 발전하려면 다양한 외국의 식품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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