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윤수의 경영미학(14)] 명확한 권한.책임이 생산성 높인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망하는 이유 중에서 월급쟁이 세계에서 권한과 책임의 한계가 뚜렷하지 못했던 기본적 풍토를 빼놓을 수 없다.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이 마치 무정부적 경영이 만연했던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안일무사를 조장하고 자율정신을 갉아먹은 것이다.한국기업에서는 권한도 없이 엉뚱하게 책임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 일이 예사롭게 일어나는 기업 풍토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아직도 느껴지지 않는다. 상사에게 결재를 모두 받고 시행한 일일지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만 당하기 일쑤다. 결재한 상사들은 어물어물 책임을 회피해 버리는데 도사다. 결재단계에선 상사는 물론 협조 부서에서도 참여하고 시시콜콜한 간섭과 통제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책임질 때는 만만하고 약한 송사리 직원을 날리는게 보통이다. 목소리 큰놈이 장땡인 경우가 많다. 「빽」이 든든하면 막히는게 없다. 이런 공정치 못한 관행이 일반화 될수록 기업의 생명력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판국에 누가 건강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것이며, 소신을 펼 수 있겠는가. 인간은 누구든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 윗사람의 의중을 파악하여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월급쟁이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나아가 자기 소신으로 착각할 수도 있고 또 처세의 유능함(?)으로까지 생각하게 된다. 주어진 권한의 내용이 실체적이고 자타가 모두 인식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후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기업의 탄력성과 유연성을 높인다.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 일의 성격상 제품개발 같은 분야는 특히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무슨 사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사업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제품력이다. 얼마나 좋은 제품을 개발해서 적기에 시장에 내놓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필자는 제품에 대해서 잘 모른다. 신발은 좀 아는 편이지만 그것도 해외영업이지 직접 생산에 관한 부분은 아니다. 더구나 FILA의 또 다른 주력품목인 의류분야는 더 생소하다. 그러나 사업 성공을 위해서 몇 가지 우선 순위를 매겨놓고 있다. 제품개발, 품질관리, 영업, 전산화, 직원들의 교육과 신속한 애프터서비스 순이다. 제품개발은 최우선 순위다. 따라서 예산의 한계를 두지 않는다. 개발을 위해 드는 비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FILA코리아의 개발부 직원들은 완전히 프리 개념으로 일한다. 해외출장도 자기들이 결정하지 사장인 필자가 결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해외 패션쇼 등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필자의 결재 없이 알아서 다녀온다. 단, 자유로운 만큼, 권한만큼 대신 결과가 있어야 한다. 결과가 없을 땐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 제품개발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에 맡긴다. 그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 필자의 원칙이다. 여기에 대해선 그 쪽 직원들도 전혀 이의가 없다. 제품 개발을 돕기위해 국내에서는 40~50명의 제품 모니터 요원을 두어 상품개발에서 부터 판매 결과까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그 모든 자료는 당연히 전산으로 연결하여 상품결과 분석과 평가가 신속히 이루어진다. 직원들은 자율적인 기업문화 속에서 주어진 권한만큼 성장하고, 그 만큼 기업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체험적 결론이다.FILA코리아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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