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천천히 우진쪽으로 다가가자 우진이 천천히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그러면서 약을 올리듯“예? 왜죠? 언제든지 쉽게 자살할 수 있게요…십만달러 더 드릴게요”라며 느물거린다. 손에 장도리를 든 대수가 화가 치밀어 우진의 관자놀이에 장도리 날카로운 부위를 들이댄다. 이때 우진이 아무 겁날 것 없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아유, 이거 어떡하나…성질 같으면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데…”면서 대수의 마음을 읽으며 미소 띠우며 대수에게 자신의 심장 박동을 멈출 수 있게하는 리모트 콘트롤러를 보여준다. 화가 치밀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는 대수는 지가 먼저 죽어버리면 자신을 십오년동안 가둔 이유을 알 수 없고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던 원수를 그냥 놔 줄 수도 없는 미칠 지경의 상황에 난감하다.
지난 5월 촬영에 들어가 서울과 부산등지 야외촬영을 마치고 이달 초부터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자리잡은 아트서비스 종합촬영소의 세트장 촬영이 한창인 영화 `올드 보이`(공동제작 쇼이스트ㆍ에그필름)의 촬영현장. 이날 촬영은 우진이 있던 다가구주택에 대수가 찾아가 자신을 가둔 이유를묻자 우진은 스스로 알아내보라며 새로운 게임을 제안하는 대목이다.
지난 13일 오후 일간지 기자들에게 공개된 이 신은 15년동안 영문도 모른 채 감금돼 있던 오대수(최민식)와 그를 가둔 이우진(유지태)이 처음으로 대면하면서 불꽃을 튀긴다. 우진의 독백처럼 이어지는 대사와 장도리로 그를 위협하는 대수의 간단한 대목이지만 좀처럼 OK사인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전부터 수십번에 걸친 테스트와 여러 번의 재촬영으로 결국은 밤늦게서야 끝났다.
오는 10월 말 개봉 예정인 `올드 보이`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신화를 만들어낸 박찬욱 감독이 충무로 캐스팅 영순위로 꼽히는 최민식과 유지태를 `투 톱`으로 내세워 크랭크인 전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기대작.
츠치야 가론이 쓰고 미네기시 노부아키가 그린 동명 일본 만화에 바탕을 둔 `올드 보이`는 영문도 모른채 15년동안 갇힌 남자와 그를 가둔 남자의 추적과 보복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많은 작품들이 영화의 홍보를 위해 줄거리가 노출되는 것과는 다리 이 영화는 결말이 철저히 비밀에 감춰져 있다. 시나리오와 콘티북에도 고유번호를 붙여 복사나 유출이 불가능하도록 했으며 만일 발설하면 개런티의 세 배를 위약금으로 물겠다는 각서까지 썼다고. 박찬욱감독은 “이번에는 사회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잘 만든 상업영화`로 목표를 정했다”면서 “미스터리분위기의 영화답지 않게 의외로 코믹한 장면이 많아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손철기자,조의준기자 runir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