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악화에 파업 접어 입법 과정서 기싸움 예상

■ 의협, 24일 2차 집단휴진 철회
'원격진료 시범사업' 논쟁 가열
영리 자회사 설립도 과제

의사들이 집단휴진을 철회한 것은 앞서 정부와의 협상에서 △원격진료 입법 연기 △의사에게 유리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성 등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낸데다 2차 집단휴진을 강행할 경우 모든 국민을 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장 의료대란은 피했지만 의·정 협의안을 실행하는 과정 곳곳에서 양쪽이 의견 차이로 충돌할 수 있는 만큼 의ㆍ정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분석이다.

20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등에 따르면 이날 의협이 집단휴진 방침을 거둬들이면서 지난 17일 발표된 의·정 협의문은 효력을 갖게 됐고 양측은 실행에 나선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원격진료 시범사업이다. 당장 다음달부터 6개월간 원격진료 시범사업이 진행되며 그 결과에 따라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를 결정짓는다. 양쪽이 합의한 것은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의협과 정부가 공동수행한다'까지다. 의협은 이번 시범사업에서 원격진료가 안전하지 못하고 효과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 입법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의협을 설득하고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시범사업의 구성과 평가 방법을 놓고 양측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최종 입법은 국회의 몫인 만큼 시범사업 결과를 놓고 여야와 정부, 전문가, 의료계 간 격론이 오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 중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을 위한 의료계 논의기구 마련도 당면 과제다. 의료계는 영리 자회사를 만들 경우 진료수익이 투기자본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의·정은 협상안대로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건정심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같은 수로 추천해 구성하기로 한 협상안도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건정심은 의사 진료수익과 직결되는 건보수가를 결정하며 공급자(의료계) 8명과 가입자(노사 등) 8명, 공익위원 8명(정부기관 4명,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공익위원을 모두 정부가 추천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절반을 의료계가 추천하는 게 협상안의 핵심이다. 이때 의료계가 추천할 수 있는 공익위원 범위가 전체 8명이 대상이 될지, 정부기관은 제외한 전문가 4명에만 해당할지, 공익위원 수 자체에 변화를 줄지 등 세부적인 논의 과정에서 양측이 맞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건정심 개편은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야 하고 추진 시점도 올해 안으로 여유 있게 잡아둬 당장 갈등이 표면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0일 1차 휴진에 참여한 의사들에 대한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 문제도 남아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충분히 증거가 확보된 의사들만 처분하겠다"고 말해 애초 엄정대처 방침과 달리 처벌 수위는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의·정 협상안을 두고 대한병원협회와 대한간호협회 등 다른 보건의료단체가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시민단체도 "건정심 내 의료계의 목소리가 커지면 건보수가가 오르게 되고 국민 보험료 부담도 커진다"며 반발하고 있어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도 정부의 숙제다. 또 의협이 집단휴진이라는 강력한 범법행위를 통해 정부로부터 성과를 얻어간 만큼 이익단체와 정부 간 협상에서 나쁜 선례를 남겨 또 다른 불법 집단행동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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