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원자재값 내림세…글로벌 투기자금 어디로

일단 美 채권으로 상당부분 옮겨갈듯
일부선 "유동성 확보하고 있다가 새 투자처 찾을것"
원자재 수입비중 높고 주식 많이 판 한국엔 긍정적
부동자금 세계증시 유입땐 IT주 본격 랠리 가능성




최근들어 원유와 금 등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상품시장에 몰려 있던 글로벌 투기자금이 어디로 이동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 우려로 원자재 시장에서 빠져나온 글로벌 자금이 안전한 자산을 찾아 대이동에 나설 것”이라며 “달러표시 자산, 특히 미국 채권시장이 이들 자금의 상당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는 한국의 경우 원자재 수입국이어서 관련 투기자금의 유입이 많지 않은데다 유가 하락에 따른 정보기술(IT)업황 호조로 증시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 세계를 떠도는 자금 중 일부가 유입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상품 투기자금, 미국행 러시 시작되나= 지난 7월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할 기세로 치솟기만 하던 국제유가는 불과 두 달 사이에 60달러대로 하락했다. 구리와 금, 설탕 등 다른 주요 상품들도 1년여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모건스탠리증권은 “2002년 이후 5년간 초강세를 이어온 상품가격이 정점을 찍었다”며 ‘슈퍼 랠리’의 종언을 선언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상품가격의 폭등은 끝났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 5년간 원자재 시장으로 몰렸던 글로벌 투기자금이 서서히 발을 빼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시장에서 빠져 나온 글로벌 투자자금의 첫 번째 행선지로 미국을 꼽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금리가 5.25%로 선진국에서 가장 높고 미국 채권은 안정성도 높아 투자 매력이 크다는 것이다. 박찬익 모건스탠리증권 상무는 “그동안 과도하게 오른 상품가격이 조정을 겪으면서 일부 투기성 자금은 상품시장에서 빠져나와 안전자산인 달러자산, 특히 10년만기 수익률이 4.7%에 달하는 미국 채권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 상무는 “신흥증시에서 당장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앞으로 중국 경기 긴축이 빠르게 진행될 경우,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에서의 자금 이탈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예측은 글로벌 펀드나 원자재시장의 투기성 자금 흐름에서 벌써 가시화되고 있다. 펀드정보업체 AMG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뮤추얼펀드 자금이 8월 말 이후 신흥시장에서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반면, 안전자산인 채권시장으로는 꾸준히 유입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국제 구리가격이 톤당 8,000달러 대에서 조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투기자금으로 분류되는 논커머셜 선물계약 포지션은 매도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다만 현재 상품시장에서 빠져 나가는 자금은 투기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당장 미국의 채권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들 자금은 일단 현금을 확보해 뒀다가, 경기의 진행방향을 확인한 뒤 투자처를 옮기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얘기다. 황금단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투기성 자금이 원자재 시장에서 빠져 나와 곧바로 미 국공채 등 달러표시 안전자산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가 미 국채로 유입되거나 유럽, 일본 등 선진증시와 원자재를 수입국 증시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시장에는 일단 호재= 국제유가를 비롯한 상품가격 급락은 원자재 수입국인 우리나라에는 일단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 동안 높아졌던 기업들의 비용구조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는데다, 상품가격 하락으로 세계 IT 산업이 성장세를 보일 경우 한국도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증권은 최근 원자재 가격 급락을 반영해 호주와 말레이시아 등 원자재 수출국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한국, 대만, 타이, 싱가포르 등의 비중 확대를 권고했다. 일부에서는 원자재 가격 급락이 위험자산인 이머징마켓에서의 자금 이탈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한국증시에서는 외국인들이 이미 많이 내다 판데다 원자재 시장과의 연관성도 높지 않아서 수급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상품가격 하락추세가 그 동안 한국을 떠난 외국인들을 불러들일 요인이 될 지는 미지수다. 이종우 한화증권 상무는 “올들어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매도는 그 동안 지나치게 높았던 비중을 줄이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원자재 시세와는 무관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상품가격의 낙폭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빠르게 진행될 경우,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박찬익 상무는 “지난 5월처럼 상품가격과 증시가 동반 급락한다면 국내 증시에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증시 IT랠리 시작되나=증시 측면에서 보면 상품가격 하락이 원자재 시장에 쏠려 있던 시장의 관심을 IT섹터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상품가격이 하락할 경우 물가에 대한 부담이 줄고 소비심리가 개선돼 결국 경기에 민감한 IT 산업이 집중 혜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글로벌 증시에서 소외됐던 IT주는 본격적인 랠리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지금부터는 연말 크리스마스와 내년 중국의 춘절 등 계절적 성수기에 진입하고 있어서 IT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다. 윤세욱 메리츠증권 이사는 “증시 안에서의 자금 흐름을 본다면 소재산업이나 정유업종에 투자됐던 자금이 IT쪽으로 옮아가면서, 글로벌 IT업종의 상승탄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건스탠리증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원자재 가격이 정점에 달한 것을 계기로, 앞으로 전기전자, 항공, 자동차, 산업재, 일부 음식료주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IT섹터는 지난 8월 이후 강한 반등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 8월 이후 14일 현재까지 12.4% 상승했고, 국내 KRX반도체지수도 8월 말 이후 14% 가량의 오름폭을 보이며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박소연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가격 강세와 신제품 모멘텀에 힘입어 IT의 긍정적인 업황이 부각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을 반영해 국내에서도 IT가 주도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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