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5월16일] <1397> 사이크스-피코협정


‘레바논과 시리아 및 모술 등 A지역은 프랑스가, 이라크와 요르단 등 B지역은 영국이 각각 차지한다.’ 1916년 5월16일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의 조르주 피코가 비밀리에 체결한 협정의 골자다. 러시아도 터키 남동부 지역을 할당 받았다. 1차대전이 한창인 와중에 세 나라가 오스만튀르크 분할방안을 짠 이유는 석유자원 확보. 전략물자로서 중요성이 확인된 석유의 매장 가능성이 높은 중동지역을 놓고 땅 따먹기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런데 왜 ‘비밀’로 했을까. 종전 후 독립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오스만튀르크와 맞서 싸우는 아랍인들을 속이기 위해서다. 비밀은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린 볼셰비키 정권이 외국과 맺은 비밀협정을 모두 공개할 때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지에 협정 전문이 실리며 깨졌다. 당장 참전국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결국 이탈리아는 제정러시아가 받기로 했던 지역을 얻었다. 전쟁기간 동안 연합국이 사용한 석유의 90% 이상을 지원했던 미국도 강력한 항의 끝에 영국계 석유회사의 지분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누구보다 분개한 세력은 아랍민족. 맥마흔 서신을 통해 10여차례나 독립을 확약 받고 10만여명이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에서 전사했던 터라 배신감에 떨었다. 중동 전역에 퍼지는 반영(反英) 정서에 대한 영국의 대응책은 두 가지. 일찌감치 지배하고 있던 페르시아를 포함해 중동지역에 100만명의 병력을 파병하는 한편으로 유대인들을 실어 날랐다. 영국의 적극적인 보호와 시오니즘이 맞물린 결과 1916년까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에서 1%에 불과했던 유대인 인구 비중이 20년 후에는 40% 이상으로 늘어났다. 석유자원에 대한 탐욕이 지구촌의 화약고인 중동지역의 갈등구조를 심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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