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의 과학적 우수성 활용을

산악인의 한 사람으로 한국인이 물려받은 훌륭한 과학적 유산 중에서 지게의 우수성을 생각하는 기회가 많다. 지게는 받침대와 두개의 다리, 작대기로 구성된 얼핏 보면 간단한 구조인 것 같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역학적 우수성은 탁월하다. 한글이 왕이나 선비들이 창안한 것이라면 지게는 목수나 머슴들이 만든 실용품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장거리 산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지게의 작대기와 두 다리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의 알루미늄과 같은 경량 금속이 없던 그 시절에 지게는 나무로밖에 만들 수가 없었다. 지게의 다리와 작대기의 무게는 지는 무게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안되고 지는 사람의 키와 힘에 맞게 적절하게 조절해야 했다. 일어서기 쉬우라고 마냥 길게만 할 수 없는 것이 지겟다리이다. 작대기가 하나인 것도 같은 이유다. 목수가 지게를 만들 때 키가 큰 머슴에게는 긴 지겟다리를, 키가 작고 힘이 센 머슴에게는 짧은 지겟다리에 짐을 많이 싣도록 긴 받침대를 붙였다. 작대기의 역할을 보더라도 지게를 받쳐주는 기능 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걸을 때 지게꾼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능도 한다. 수학 방정식이나 공학적 이론을 뛰어넘는 탁월한 창안이라고 할 만하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지게가 많이 쓰이지 않아 농업용구로서의 가치도 떨어졌다고 하나 등산길에서는 새삼 가치를 깨닫게 된다. 요즘 산악인들은 지게가 아니라 알루미늄과 천으로 된 백팩(back pack)을 지고 작대기 대신 경금속으로 만든 폴(pole)을 쓴다. 지게와 백팩을 비교해보자. 산행에서는 배고픔과 피곤함을 견디고 목표지점까지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 일주일 정도의 장기 산행이라면 등짐의 무게로 허리가 부러질 정도다. 매시간마다 쉬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가고 때로는 낙오자가 되기도 한다. 산행에서 낙오하는 것은 본인에게 좌절이자 대원들에게 큰 짐이 된다. 절대로 낙오자가 돼서는 안된다. 백팩을 짊어진 등산객은 쉬기 위해 짐을 내릴 때 나뒹굴듯 주저앉게 되고 다시 일어설 때는 역도선수가 온 힘을 모아 무게를 자기 키만큼 들어올리듯 해야 한다. 이때 소모하는 에너지가 너무 커 쉬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경우 백팩에 지겟다리와 작대기 같은 것이 있어 짐을 내리기도, 받쳐놓기도, 다시 일어서기도 쉽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제품을 만든다면 세계적인 특허품이 될 것이고 한국 산악인들의 기록도 크게 향상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석화(美 솔트레이크大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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