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공원은 ‘노숙자 해방구’

관할 구청ㆍ경찰 단속수단없어 `뒷짐`만 주말인 27일 낮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명소 중 하나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 초입. 인사동 구경에 나선 일본인 관광객 호타로 야노(23)씨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에 코를 틀어 막아야했다. 입구의 크라운베이커리앞 쌈지공원에서 노숙자로 보이는 남자 서넛이 아예 버너에 냄비를 올려놓고 찌게를 끓여가며 웃옷을 벗어부친 채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왁자지껄한 공원 정면에는 관광객을 위한 관광정보센터 부스가 있고,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는 시민들도 여럿 있었지만 노숙자들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노씨는 “인사동 전통거리 구경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나섰으나 너무도 불결하고 지저분한 모습에 기분을 잡쳤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여름을 맞아 서울도심 곳곳에 위치한 쌈지공원을 비롯한 서울 도심 공원을 일부 노숙자들이 장악, 각종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시내 주요 관광명소나 빌딩 사이사이에 있는 소공원이 노숙자들의 잠자리 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는 24시간 술판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관할 구청과 경찰은 단속 수단이 없어 손을 놓은 상태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뒷편의 쌈지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 노숙생활 4년째인 윤모(44)씨는 “조용한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역 앞 지하도에서 이곳으로 이틀 전 옮겨왔다. 총 6명의 노숙자가 생활하는 이곳에서는 새로운 `점령군` 등장 이후 평소 아침이면 배드민턴 운동 등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인근 주민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종로구 옥인동 인왕산 자락 공터나 명동 회현역에도 최근 들어 새로운 노숙자들이 독차지해버렸다. 특히 인사동에서 상주하는 10여명의 노숙자들은 휴대용 가스버너로 아침을 해먹고 낮에는 맨발로 돌아다니며 소주 구걸을 하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이곳에 이처럼 흉한 모습이 방치돼 서울의 이미지도 추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들이 서울역 용산역 등 노숙자들이 많이 모인 곳을 떠나 도심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밥과 돈, 그리고 조용한 환경` 때문이다. 노숙자 김모(37)씨는 “인사동은 유동인구가 많아 구걸이 쉽고 인근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 있어 일단 숙식해결이 쉽다”고 말했다. 인왕산 지역은 고사를 지내고 남는 음식을 챙겨먹기 위한 노숙자들이 몰리고 있다. 문제는 이들 노숙자의 진출을 막을 법적 제도적 규정이 없다는 점. 종로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노숙자들이 사람을 폭행하는 등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한 쉼터로 돌아가도록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복지부에서 획기적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속수무책”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종로경찰서 방범지도계 관계자는 “노숙자가 문제를 일으키면 구청 사회복지과에 인계하고 있다”며 “혹시 처벌을 하더라도 즉심이나 벌금형 모두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노숙자 다시 서기 지원센터 황운성 소장은 “쉼터에 있는 노숙자는 재활의지가 강하지만 서울 거리에 있는 500여명은 사실상 노숙환자”라며 “길거리 노숙자를 치료 대상으로 인정해 치료센터로 데려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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