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숨진 채로 발견된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은 안기부,국정원 도청 사건이 불거진 뒤 10월 초와 11월 초, 중순 각각 검찰에 소환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차장은 세 차례 검찰 조사에서 비교적 자신의 재직 기간(2001.11~2003.4)에 있었던 국정원의 도청 실태를 솔직히 진술, 수사에 협조적이었던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씨가 김대중 정부 후반기를 책임졌던 신건 전 원장의 재직 기간(2001.
3~2003.4)에 임기를 같이 했던 점을 중시해 신씨 소환 전 이씨를 통해 확실한 진술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해 3차례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소환 뒤 검찰 수사 급진전 = 검찰은 10월 4일 이씨를 첫 소환한 뒤에 불과이틀만인 6일 전임자인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을 체포하며 수사의 속도를 올렸다.
이씨 소환조사 후 검찰은 구속 수감된 김은성씨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사를벌이며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췄고 이과정에서 두 전직 차장은 비교적 국정원 도청 실태에 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달 10일 신건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국정원 직원들에게 도청을 지시하거나 묵인했는지, 자료를 외부에 유출했는지 등을 조사한 뒤 이튿날 다시 이씨를 불러 도청 지시, 자료 유출 여부 등을 추궁하는 등 DJ정부 후반기 국정원도청 실태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임동원, 신건 전 두 원장 재직 기간에 국내담당 차장을 맡았던김은성씨와 달리 이씨는 재직 기간 중 국정원이 도청 장비를 폐기했기 때문에(2002.
3월께) 김씨나 두 원장에 비해 도청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씨는 검찰에서 세 차례 조사를 받은 뒤 무척 괴로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수사의 칼날이 전직 원장들 쪽으로 향하자 검찰조사 후 신씨 등과 전화하면서 괴로운 심정을 전하는 등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한다.
또 공직 활동에서 은퇴한 두 전직 원장이나 김은성씨와 달리 대학 총장의 신분으로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도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첫 소환 당시 대학총장으로서 조사를 받아야하는 점을 의식한 듯,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조사를 받은 후 많이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도청 내용 유출 부분에는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수사팀에서는 다른 사람들에비해 범죄 사실이 가볍다고 판단, 불입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 도청 수사 ‘오점’ 남겨…차질 불가피 = 넉 달 가까이 계속된 검찰의 도청수사는 막바지 종결을 앞두고 주요 조사 대상자가 숨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오점'을남기게 됐다.
수사 과정에서 비롯된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면, 검찰로선 무리한수사를 벌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전직 두 원장과 국내 담당 차장이 구속 수감되고 한 명의 차장은 검찰 수사가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를 당한 국정원이나 국민의정부 관계자들의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검찰은 수사가 국정원 도청 자료의 외부 유출과 삼성그룹의 1997년 대선자금 의혹 부분만 남아 있어 당장 이씨의 자살로 수사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 로는보고 있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약간의 일정 조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수사에 차질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이씨의 자살로 심각한 심적 충격을 받을 전직 두 원장이나 나머지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국정원 도청 자료 외부 유출 의혹은 2002년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미궁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전직두 원장에 대한 공소유지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